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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규원 Mar 25. 2020

메들렌에게 세상을 느끼게 해준 사람

학자이면서 진정한 의사였던 사람

  몸이 약했던 나는 아픈 사람들을 고쳐주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의사라는 직업이 어떤지도 몰랐고 그냥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을 한다는 것이 의사라는 직업의 숭고함을 나타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막 걸음마를 떼고 걷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을 무렵, 갑자기 걷질 못하고 주저앉았다고 한다. 그 때 부모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나는 상상을 통해서만 당시의 당황스러움과 염려를 떠올려볼 수 있을 뿐이다. 나는 내가 아팠다는 사실도 기억 너머에 있어서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부모님께 들은 나의 진단명은 정확하지가 않았다. 가장 심각했던 부위는 폐였는데, 아마도 당시 의료 환경에서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했던 것 같다. 다행히 정확한 원인은 몰라도 겉으로 나타나는 증상에 대한 처방은 할 수 있었기에 나는 회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한달 남짓했던 병원생활 동안 나는 중환자실에도 있었다고 들었다. 내가 병원에 입원할 당시에는 우리 가족 중 내가 가장 약한 모습이었는데, 퇴원할 때는 어머니가 가장 쇠약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믿을 수 없었지만 어머니는 내가 입원해 있는 동안 잠을 한 숨도 안 주무셨다고 한다. 어머니의 극진한 돌봄을 받으며 나는 다행히 회복할 수 있었지만, 그 후유증으로 나는 천식 증세가 있어서 평생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의사 선생님은 어려서부터 내가 두려워했던 존재이면서 동경하는 대상이기도 했다. 병원에 대한 거부감은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생겼다. 몸이 너무 자주 아팠기 때문에 동네 소아과는 정말 자주 갔었고, 초등학교 저학년때부터 병원을 혼자 다니기도 했다. 한 번은 정말 아파서 동네 소아과로는 안되겠어서 서울대학 병원을 갔었는데 앉아있는 것도 힘들어서 트럭 좌석 뒤에 있는 좁은 공간에 누워서 갔던 기억이 난다. 병원에 자주 갔던 사람치고 좋은 기억들을 갖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예전 기억을 떠올려 보면 온통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기에 아픈 사람을 도와주고 살리는 의사 선생님에 대한 동경심이 생긴 것도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나는 가장 인간미 넘치는 의사 중 한 사람인 올리버 색스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어 참으로 기쁘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에 그의 책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가 소개된 후에 갑자기 역주행을 하면서 독자들이 많이 찾았다고 한다. 그는 책의 서문에서 자신이 쓴 글을 환자를 진료하면서 그가 관찰한 것을 기록한 연구서라고 밝혔다. 그렇다. 그는 확실히 뇌의 기능과 관련된 질환들을 연구하는 연구자가 맞다. 그런데 나는 그의 글에서 질병을 연구하는 냉철한 모습의 연구자는 전혀 그려지질 않고 환자를 향한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는 인간적인 의사의 모습이 훨씬 더 뚜렷하게 그려지는 것 같았다. 정말 많은 환자들이 그에게 오기까지 치료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한 채 그를 찾아왔다. 그는 자신의 책에 자신에게 온 환자들의 상황을 자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그는 때로는 자신의 환자의 집까지 찾아가서 그 환자의 상태를 물어보고 챙겨줄 정도로 환자를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이 부분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우리 딸 유주가 자주 다니던 소아과의 원장 선생님은 딱 한번 직접 전화를 걸어 요즘 유주의 상태는 어떤지 물어보신 적이 있었다. 유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직접 전화를 걸어 건강한지 여부를 물어보셨던 그 선생님께 감동을 받았었다. 단 한 번이었지만 그 단 한 번의 통화가 든든한 신뢰관계를 형성하게 하는 결정적 순간이 되었다. 그런데 올리버 색스 선생님은 환자의 집을 직접 방문하여 환자들을 살폈다니 참 놀라운 일이었다.



  이 책에 기록된 여러 환자들의 기록은 하나 하나가 놀라운 사연들로 가득했다. 그의 글을 읽음을 통해 사람에게 뇌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한 사람의 인간성이 얼마나 파괴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에서조차도 존엄한 인간으로서 그들은 얼마나 가치있는 존재들인지 되뇌어 볼 수 있었다. 놀라운 이야기들로 가득한 환자들의 사연 가운데 특별히 메들렌 할머니의 사연이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녀는 뇌성마비로 인해 거의 태어나자마자 앞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손을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마치 손이 몸에 붙어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의 손의 감각들은 모두 정상이었다. 다른 누군가가 손을 잡아주면 느낄 수 있었고, 손을 통해 느껴지는 모든 감각들을 느꼈으며 힘도 있었다. 그런데 스스로 손을 움직이려는 시도를 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정신은 어떠했을까? 놀랍게도 그녀는 매우 영리했으며,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이 읽어주는 책을 들으며 방대한 독서를 통해 지식 수준도 높았다. 그녀는 태어나서 60이 넘는 기간동안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전적으로 다른 사람을 의지하여 생활을 해왔다. 그녀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하던 저자는 갑자기 예전에 읽었던 사례가 생각이 났다. 러시아에서 전쟁 중에 다친 사람들이 수술을 받고 난 후에 원인을 알 수 없이 팔과 다리에 감각이 없어지는 사례들이 있었다. 그들이 잃어버린 감각을 찾는 방법은 다시 팔을 사용하게 하여 잃어버린 감각을 찾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메들렌의 경우는 지금껏 스스로 팔을 사용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잃어버린 것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최초로 손을 움직이게끔 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그는 헬렌 켈러가 처음으로 ‘물’ 이라는 말을 직접 내뱉은 이후에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처럼 처음으로 감각을 터트리는 순간이 오기를 기대했었다. 아주 작은 변화라도 괜찮았다. 헬렌 켈러의 경우처럼 작은 변화만 있다면 분명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메들렌에게 자기의 생각을 말했고, 그녀 역시 희망에 찬 목소리로 그런 변화가 생길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담당 간호사에게 시키길, 그녀에게 식사를 줄 때는 무심한 듯 그녀 옆에 그릇을 놓아두고 나오라고 했다. 너무 멀리 두지는 말고 그녀가 손을 조금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두라고 한 것이다. 그런 조치를 내린 뒤 얼마 후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배고픔을 느낀 메들렌이 처음으로 스스로 손을 움직여 주변을 더듬다가 도넛을 집게 된 것이다. 작은 시작은 큰 결과로 나타났다. 그녀의 상태는 빠르게 좋아졌고, 특히 그녀는 점토를 이용하여 다양한 물건들을 만들며 그녀가 가졌던 예술적 능력들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에 그녀와 똑같은 상황에 있던 남자환자도 같은 방법으로 회복이 되었다. 그 역시 그녀처럼 뇌성마비로 앞을 볼 수 없었고 스스로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메들렌처럼 지적 수준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회복의 속도가 느리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걱정과는 달리 손을 익숙하게 사용하기까지 빠르게 회복되었다.



단 하나라도 좋으니 무언가 돌파구를 얻기만 한다면 (단 하나의 동작이라도 좋고, 지각이라도 좋고, 충동이라도 좋고, 최초의 한마디라도 좋다. 헬렌 켈러에게 '물' 이라는 단어가 그런 역할을 했듯이 말이다) '무' 였던 세계가 '전부' 로 뒤바뀔 가능성이 있다.  
                                                          -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메들렌의 손' 중에서 115P.



  나는 평생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것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녀가 얼마나 기뻤을지 생각하면 함께 행복해지는 것 같다. 그녀에게는 정말 ‘’ 였던 세계가 ‘전부’ 로 뒤바뀐 것이었다. 처음에 그녀는 손을 더듬으며 도넛을 느낀 것이지만 그것은 그녀가 처음으로 세상을 느낀 순간이었다.






  건강에 대해서 특별히 더욱 신경을 쓰게 되는 요즘이다.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는 질병들은 인종과 나이, 그리고 성별을 가리지도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이지만 가장 소홀히 하기도 쉬운 것 같다. 메들렌의 경우에는 다행스럽게도 아주 작은 변화가 아주 바람직한 결과로 나타났다. 지금 건강한 사람들은 반대의 경우를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아주 사소한 작은 것이 빠르게 우리의 건강을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체적 건강 뿐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도 시작은 매우 사소한 것으로부터 일어나서 시간이 지나면서 큰 결과로 돌아오는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겠다.




참고 서적.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알마 (2016)




Photo by Cristian Newma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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