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규원 Jun 16. 2020

통계를 알았다면 결과는 달랐을까

O.J. 심슨 사건을 아시나요

  어렸을 적 자주 읽었던 책 가운데 ‘먼 나라 이웃 나라’ 라는 책이 있었다. 그 책에서 본 내용 가운데 어린 나의 상식을 깨뜨려 준 내용이 하나 있었는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가 ‘중국어’ 라고 나와 있었다. 외국말은 무조건 영어인 줄만 알았던 내게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가 중국어라는 것은 나름의 충격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나온 내용에는 전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언어는 ‘영어’ 라는 설명이 나왔다. 내 기억에 의하면 중국말은 중국의 인구가 그만큼 많다보니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가 되었고, 영어는 사용 인구는 중국에 미치지 못하지만 가장 많은 나라에서 사용되는 언어라고 했었다. 당시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야지만 학교 정규 수업과목으로 영어를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주변 친구들은 이미 영어를 상당히 많이 접하고 배운 상태에서 중학교에 입학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던 것 같다.



  지금도 물론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영어는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여전히 영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언어이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제 1 외국어로 영어를 배운다. 그리고 세계에서 통용되는 공식문서는 영어를 대표 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영어의 중요성이 이렇게나 큰 가운데 나는 어쩌면 영어와 반대편에 있을 법한 수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현재 영어만큼이나, 어쩌면 수학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어떤 면에서는, 영어보다 더 널리 사용되는 세계 공통어는 숫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학은 기본적으로 숫자를 다루는 학문이다 보니 수학은 큰 의미에서 전세계 공통 학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오구리 히로시가 쓴 책 [수학의 언어로 세상을 본다면] 은 수학자이자 교수인 저자가 자신의 자녀에게 수학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쓰여 있다. 자녀에게 들려주는 글이라서 비교적 친절한 어투로 설명을 하지만 그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좀 버겁게 느껴졌다. 어려운 내용들을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을 멈추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만 읽으려고 노력했다. 그 가운데 하나는 통계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우리가 통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고 있기만 해도 잘못된 정보에 현혹되지 않을 수가 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통계와 관련해서,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는 것이 통계적으로 볼 때 결국에는 고객이 돈을 잃게 된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그 이야기와 함께 들려주는 이야기가 내 관심을 끌었다.



  1994년 미국에서 일어난 O. J. 심슨 살인사건은 미국전역으로 그 재판과정이 중계되었고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유명한 풋볼 선수였던 심슨은 자신의 백인 아내와 식당 종업원의 살해 용의자로 재판을 받았다. 여러 가지 증거가 그를 범인으로 지목했지만 그는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검사 측에서는 심슨이 이전부터 아내를 폭행한 전과가 있다며 그가 범인이라고 주장했지만 변호인 측에서는 한 통계 자료를 인용하며 검사 측의 주장을 반박하였다. 미국에서 남편으로부터 가정폭력을 경험한 아내가 살해될 가능성은 2,500명 중 한 명 뿐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이는 고작 0.04% 확률이기 때문에 이것으로 그를 범인으로 모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이 주장은 한편으로는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만일 검사 측에서 통계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바로 반박될 주장이었고, 재판의 결과도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당시의 통계에 의하면 미국의 기혼 여성 10만 명 중에서 배우자가 아닌 남성에게 살해당한 여성은 5명이었다. 그리고 배우자에게 살해당한 여성은 40명이었고 이들은 모두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이었다. 심슨의 변호인 측이 주장한 통계는 살해당하지 않은 여성들까지 반영된 결과인 반면, 실제로 살인이 일어난 경우에 가정폭력이 있었는지 유무는 매우 결정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 살해당한 여인들 45명 가운데 40명이 배우자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은 매우 끔찍한 일이다. 변호인 측의 통계를 실제 일어난 살인사건들로 다시 제시한다면 0.04% 는 89% 가 된다.



  심슨이 무죄를 받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장갑을 얼른 껴보라고 검사측에서 너무 성급하게 밀어붙였기 때문이었다. 발견된 가죽 장갑은 피에 젖어 있었기 때문에 이미 쪼그라들어 있었고, 역시나 심슨의 손에는 들어가지도 않았다. 게다가 사건을 맡은 형사가 인종 차별 행위를 과거에 여러 차례 한 것이 배심원들의 판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당시에 초등학교 6학년이었기 때문에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심슨의 얼굴과 그가 재판이 끝나고 주먹을 불끈 쥐면서 기뻐했던 장면은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다.



주먹을 불끈 쥔 O.J. 심슨



  형사사건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심슨은 그 후에 진행된 민사재판에서는 피해자의 유가족들에게 약 370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선고를 받았다. 그 후에 심슨은 당시의 상황을 바탕으로 책도 발간했는데, 그 책 제목은 ‘If I Did It – 만일 내가 했다면’ 이었다. 그런데 실제 출판된 책에는 피해자 유가족들의 개입으로 ‘If’ 가 작게 인쇄되어 있어 얼핏 보면 ‘I Did it – 내가 그랬다’ 처럼 보인다고 한다.



IF I DID IT, 'IF' 를 찾아보세요






  수학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전보다 더 많아지고 있다는 슬픈 보도자료를 얼마 전 봤었다. 그리고 수학 교육을 강화하기보다 점점 더 수학과목의 수업시간을 줄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산업계는 점점 더 STEM 분야 (과학, 기술, 공학, 수학) 가 강화되어 가고 있는데, 수학에 대한 중요성에 비해 현실은 만족스럽지 못한 것 같아 걱정스럽다. 이 책을 읽으며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간 부분들이 많아서 나 스스로도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나는 앞으로도 수학 관련 책들을 더 찾아보고 수학 공부도 틈틈이 해나갈 생각이다. 일단 수학을 배우는 이유와 이것이 어떤 면에서 응용되고 도움이 되는지 알고 나면 좀 더 수학을 가까이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수학 공부를 오랫동안 하지 않아서 두려운 생각이 드는 모든 사람들이 그래도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볼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참고. 오구리 히로시, [수학의 언어로 세상을 본다면], 바다출판사



#수학 #수포자안돼 #통계 #세계공통언어 #오구리히로시 #O.J.심슨



**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 후에 심슨은 납치 강도사건으로 감옥에 갔다가 5년을 살고 나왔다고 하네요. 현재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잘 살고 있을 것 같지는 않네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