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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규원 Apr 16. 2021

말은 옮겨질 때마다 변한다

듣는 말이 모두에게 똑같진 않다

  항상 조심해야 하는 것 중에 그래도 정말 중요한 것이 말을 옮기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대화를 하다가 어떤 계기로 다른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를 하게 될 때 정말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자기의 기억을 정확하다고 믿을 수도 있는데, 불행하게도 사람의 기억력이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들을 때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녹음한 것처럼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우리는 과거에 들었던 어떤 이야기들을 똑같이 받아 적을 수 있어야 할 것이고, 어떤 오해도 다 풀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야기의 요지를 기억하는데, 그 요지마저도 객관적이지 못하며 자신의 주관이 가득한 해석을 통해 기억에 남게 된다. 내가 만약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다른 이들에 대해 들었던 이야기들을 당사자들에게 들려줄 수 있다면, 아마도 그들 중 일부는 나를 과대망상에 빠진 사람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남 이야기를 절대 옮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들은 이야기들은 그것이 비록 정당한 것이라 해도 내 기억 속에만 남아있게 해야 하며, 특히나 어떤 망상도 기억 밖으로 나오게 해서는 안 된다.


  말에 대한 많은 속담이나 격언들 중에서 이렇게 옮겨지는 말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것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런 속담을 하나 만들 수 있다면, ‘말은 옮겨질 때마다 모습이 바뀐다’라고 정하고 싶다. 다른 사람이 한 말을 들을 때, 우리는 자체 필터를 통해 우리가 기억하고 싶어 하는 내용들만 남기고, 나머지는 잊어버리거나 왜곡시켜 버린다. 마치 바이러스가 숙주를 옮겨 다닐 때마다 형질을 바꾸는 것처럼 말도 사람의 기억 속에 들어왔다가 끄집어 내 질 때 그 내용이 바뀌고 만다. 


  오래 전에 직접 경험한 사례가 있다. 한 장례식장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오랜만에 모인 사람들이 엄숙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때 이제 막 도착한 한 남성이 조문을 마치고 그 대화에 끼게 되었다.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를 물었는데, 그 남성은 오랜만에 회사에 휴가를 내고 휴양지에서 홀로 휴가를 보내다 급히 부고를 듣고 올라온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 가운데 한 여성이 왜 휴가를 혼자 보냈는지 궁금해 하며 물었는데, 그 남성은 다른 가족들은 모두 바빠서 혼자 휴가를 다녀왔다고 했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대화는 끝이 났는데, 그 가운데 있던 다른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그 남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 남성은 오랜만에 일을 쉬었으며, 아까 어떤 여성도 말한 것과 같이 가족들도 없이 혼자 휴양지에 가서 어떤 다른 여자를 만났는지 모르지만 휴가를 보내다 급히 올라왔다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자리에 있던 나는 참 황당했던 것이 그 여성이 물어본 것은 왜 휴가를 혼자서 보냈는지였는데, 마치 그 여성도 이 남성이 어떤 불순한 의도로 혼자서 휴가를 보낸 건 아닌지 의구심을 갖고 물어본 것처럼 말이 옮겨졌다는 것이다. 이 사례가 적절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쁜 의도를 갖고 말을 왜곡시켜 옮기는 경우와 잘못 해석되어져서 옮겨진 경우 둘 다 결과는 나쁜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다른 사람의 말은 옮기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제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속담이 무색할 정도로 발 없는 말이 전 세계 곳곳을, 그것도 순식간에 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더 말조심하면서 특히나 부정확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생각들을 정확한 글로 써서 퍼트리는 행동은 더욱 경계해야겠다. 요즘은 글이 말만큼 빠르게 전파되며, 더 괴물처럼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쉿. Photo by Kristina Flour on Unsplash





Photo by Joshua J. Cotte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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