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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규원 Apr 17. 2021

화내서 미안해

먼저 풀어줘서 고마워

  가끔은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훨씬 지혜로울 때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마음도 훨씬 넓은 것처럼 보일 때도 많다. 사람은 분명 몸이 자라면서 내면도 함께 자라기를 기대하지만 어떨 때는 오히려 속이 더 좁아진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다. 어른인 부모들은 어른이 아닌 아이들의 미숙한 행동들에 욱하게 되고, 자신의 어른스럽지 못한 대처로 인해 기분이 상해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지만  우리 아이들은 부모에게 혼이 난 후에도 금새 해맑은 표정으로 부모에게 다가와 준다.


  마치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가장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비록 혼이 났지만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먼저 다가와서 기분을 풀어준다. 더 참지 못하고, 용납해주지 못해서 후회하고 있는 부모에게 먼저 다가와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주고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사람은 아이들일 때가 많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 어른들과 달리 나쁜 기분이 오래 가지 않고, 사소한 즐거움에도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정직하게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잘못한 것은 없었다. 잘못은 아이들의 모습을 어른의 시선으로만 바라보며 기다려주지 못한 어른들에게 있으며, 먼저 화내고 분위기를 망친 후 이상한 이유로 아이들을 다그치는 어른이 문제였다.


  우리 아이들을 어른의 입장에서 혼내고 사과하고 안아주기를 반복하면서 느낀 점은 만약 우리 아이들이 나처럼 속이 좁아서 아빠가 화낸 것을 잊지 않고 다
기억하고 있다면 우리 관계는 회복되기가 참 힘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매번 아빠의 사과를 받아주고 안아주는 아이들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며, 더 용납하며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겠다.





  또 한가지 드는 생각은 아이들의 안 좋은 행동들이 어디서 부터 누구로부터 배운 것일까 생각해봐야겠다는 것이다. 혹시 나의 모습과 행동들로부터 배운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겠다. 내가 부모가 되기 훨씬 전에 들었던 인상적인 말이 하나 있다.


아이들은 부모의 앞모습이 아닌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

부모가 앞에서 아무리 가르치고 훈계해도 아이들은 결국 부모의 뒤에서 부모가 하는 행동을 보며 배운다.




Photo by Nathan Dumla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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