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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규원 Aug 25. 2021

지갑을 두껍게 하라

가능하면 5만원짜리로

  신용카드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현금을 갖고 다니는 사람이 많이 사라졌다고 들었다. 나 역시도 지갑은 있었지만 그 지갑에는 현금을 넣어 놓지는 않았다. 결제가 필요하면 카드를 긁고, 지갑을 챙기지 않았을 때는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계좌이체를 하거나 **페이 앱을 사용하여 결제를 할 수도 있으니 현금이 필요하지 않았다. 현금이 지갑에 있으면 현금을 먼저 써서 없애버리기도 했다. 내 나름대로는 혹시나 읽어버리게 될지도 모르니 먼저 써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갑의 현금을 잃어버리는 일은 내가 살면서 한번도 겪지 않았던 일이었고, 설령 지갑을 분실해서 현금을 찾지 못한다 해도 그 타격이 그렇게 큰 것은 아니었다.


  현금을 갖고 있지 않으면서 주로 신용카드로만 살아보니 편하기는 했지만 재정 관리가 잘 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필요해서 쓰기는 하는데, 이게 가까운 시일 안에 지불해야 할 금액이라 생각하니 계속 빚을 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카드 결제일은 보통 급여일 이후로 설정하기 때문에 월급이 들어와서 느끼는 기쁨은 아주 잠시일 뿐이고, 며칠 안으로 내가 사용한 카드값을 지불하는 슬픔을 경험하게 된다.  어쩌다 너무 많은 금액을 써서 연체라도 되버리는 달에는 정말 다 잃은 듯은 기분이 되어 불편하더라도 아무것도 사지 않고 살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마음이 항상 가난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여유가 없고, 크게 티는 내지 않지만 왠지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것처럼 느낀다. 


Photo by Annie Spratt on Unsplash


  한때는 돈을 좋아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20대 초반에는 고결하고 고상한 것을 추구했기에 '돈'은 너무 세속적인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 고상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당연한 지식을 갖게 되었다. 그래도 내가 세속적인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아서 돈은 적당히만 있으면 된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 적당히 라는 기준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지게 되었고, 한 때는 한달에 200만원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던 것이 점점 현실적으로 바뀌게 되더니 이제는 적당히가 충분히가 되어버렸다. 지금도 마음으로는 돈보다 더 귀한 가치가 있다고 믿고 있지만 내 생활에서 나오는 행동은 돈이 가장 좋은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래서 결국 내가 아무리 돈을 멀리하는 척 해봐야 나오는 행동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돈을 사랑한다고 인정하게 되었다.


  독일의 경제문학가인 보도 섀퍼는 그의 저서 [돈] (원제: 경제적 자유로 가는 길)에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마음을 인정하라고 조언한다. 물론 돈보다 더 귀한 가치들이 이 세상에는 많이 있지만 돈을 많이 갖고 싶어하는 마음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성경에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한 비유 때문일까, 사람들은 돈을 원하는 마음을 감추고 싶어한다. 그런데 세상의 많은 경우에 그렇듯이 어떤 것이든 진심으로 원하고 찾고 구해야지 그것을 얻을 수 있다. 실제로는 부자가 되고 싶은데, 돈을 멀리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돈을 버는 것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면 부자가 될 수 없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돈을 불리는 방법들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마음과 벌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조언한 내용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곳간을 비우지 말라는 것이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의 곳간을 넉넉히 채워야 한다. 곳간을 크기를 늘리는 것은 그 다음 문제다. 언제든지 위기 상황이 왔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여유자금이 있는 사람은 평상시에 올바른 선택을 할 수 가 있다. 비정상적으로 낙관적으로 판단해서 무리한 결정을 하지 않을 가능성도 커지고, 주변 사람들의 말에 혹해서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면 삶의 모든 영역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난다. 사람마다 그 여유자금이 어느정도인지는 다르겠지만 위기가 와도 무너지지 않고 넘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부자가 될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높다. 보다 현실적인 조언으로 보도 섀퍼는 지갑에 현금을 충분히 넣어두고 살아보라고 조언한다. 지갑에 있는 돈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100만원 정도 지갑에 넣고 살아보라고 한다. 나는 100만원이 너무 크다고 생각해서 일단 20만원 정도만 지갑에 넣고 한달을 살았는데, 이 돈은 평소에 사용하지는 않았고 급하게 누군가에게 도움을 줘야 할 때 사용하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확실히 지갑에 현금을 넣어두니 지갑이 두꺼워져서 그런지 내 마음의 두께도 두꺼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Photo by Viacheslav Bublyk on Unsplash


  예전에 함께 일했던 과장님은 일본에서 십여년을 사셨다고 하는데, 그 때 일본의 부자들과 함께 일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겪은 일본의 부자 가운데 한 사람은 커다란 장지갑을 사용했는데, 그 지갑 안에는 항상 10,000엔짜리 지폐 100장이 채워져 있었다고 말했다. 그 일본 부자는 돈을 지불해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장지갑에서 돈을 모두 꺼내서 부채처럼 펼쳐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매우 느리게 돈을 지불한 뒤 다시 지갑에 나머지 돈을 넣었다고 한다. 그 부자는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을 보였고, 항상 당당하게 요구하고 행동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가진 돈을 다른 누군가에게 일부러 보이기 위해 행동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가난의 마음이 아니라 풍요의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적당한 금액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확보해 놓으라는 것이다.




  한달이 지난 현재 내 지갑에는 18만원이 있다. 날 위해서 쓴 건 아니고 지하철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는데 다가온 물건파는 사람에게 만원을 쓴 것(장애인들이 만든 것이라면서 가격도 정하지 않고 팔아달라고 해서 팔아줬다)과 모처럼 가족들과 카드놀이를 하기 위해 사용한 돈, 그리고 남은 잔돈은 아이들 저금통에 넣으라고 용돈으로 준 정도였다. 앞으로 내가 얼마나 큰 부자가 될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돈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조금은 여유를 갖게 된 태도의 변화는 긍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지갑의 현금 금액을 조금 더 늘려볼까 생각 중이다. 





Photo by Shane on Unsplash


보도 섀퍼, [돈] 북플러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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