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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규원 Sep 29. 2021

실력있는 자가 떠난다

전쟁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떠날 수 있는 사람이다

  어떤 책은 읽으려고 받아 든 순간부터 내용이 기대가 되고 너무 재밌을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나의 경우에는 좋아하는 작가님의 신작이 나왔을 때라던가 좋아하는 번역가 분의 새 책이 나왔을 때(SNS를 통해 번역가 선생님이 어떤 책을 번역작업 중이라는 소식을 먼저 접한다. 따라서 그 번역이 진행되는 동안 기대를 하며 기다리기도 한다), 심지어는 좋아하는 출판사에서 새책을 홍보하는 글을 읽었을 때 등이 그렇다. 반면, SNS에서 어느 강사가, 어느 인플루언서가 책 내용을 소개하면서 추천할 때는 그 책을 사서 읽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지는 편이다. 어느 순간부터 책 내용을 소개하는 영상은 보지 않게 되고, 그냥 제목만 확인하고 넘어간다. 어떤 책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책의 내용을 듣게 되면 독서의 즐거움이 반감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북튜버들과 SNS에 서평이나 책에 대한 소감들을 남기는 사람들의 활동은 적극 지지한다. 누군가는 그들의 활동에 영향을 받아 독서의 길로 들어서게 될 수도 있으니까. 


  앤두류 양의 [보통 사람들의 전쟁]은 책을 받아든 순간부터 기대가 되는 책이었다. 일단 제목으로부터 유추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았고, 작가와 번역가에 대해서는 몰랐었지만 흐름 출판에서 발간된 다수의 책들이 내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었기에 기대가 됐었다. 이 책은 그 기대를 제대로 충족시켜 주지는 못했다. 아마도 지금 시점에서보다 이 책이 막 발간되었던 2019년에 읽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의 혁명적인 발달로 인해 일자리를 위협받을 '보통' 사람들에 대한 전망은 그렇게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다.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 자체는 매우 중요하고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내용이지만 뭔가 만족할만한 의외성 있는 이야기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의 혁명적 발전은 우리 사회 전 분야에 걸쳐서 영향을 끼치지만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가장 우선적으로,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 이들은 일의 난이도가 낮고, 대세에 저항할 힘의 세력이 없는 '보통' 사람들이 될 것이다. 생각해 보면 유통, 판매, 운송 업에 해당하는 직업군이 이윤을 추구하는 경영자들의 결정을 저지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정부는 정책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구직자들을 새로운 일자리에 맞는 인력으로 재교육하기 위해 많은 재정을 사용하지만 앞으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반면 의사,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은 그들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역량들을 투입하며 '보통'의 사람들이 되지 않으려 조직적인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결국 시간이 흘러서 현직에 있는 전문직 종사자들이 은퇴하게 되면 그들의 자리를 새로운 젊은 사람들이 아닌 기계가 대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시기가 조금 늦어질 뿐 큰 흐름에서는 그들도 보통 사람들이 되고 말 것이다. 


  저자는 미래의 모습을 암울하게만 이야기하지는 않는데, 실제 내용은 좀 암울하다. 저자가 희망을 갖고 대책으로 이야기하는 '기본 소득'에 대한 이야기는 과연 대안이 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어차피 해결책을 기대하고 읽은 것이 아니라서 그냥 저자의 한 가지 의견 정도로만 생각했다. 이 책으로부터 강하게 남은 인상적인 하나의 구절을 꼽자면, 실리콘 밸리의 격언으로 남은 '유능한 사람이 먼저 떠난다' 라는 것이었다. (정확한 구절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의미는 같다) 대체되지 않으려면 지금 자리를 계속 지켜야 하지만, 대체될 수 밖에 없을 때는 남는 자리로(아직은 대체되지 않은 자리로) 옮겨야 하는 것을 뜻하며, 완전히 대체되기 전에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유능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회사를 위해 의리를 지키며 충성을 보이는 직원들도 유능한 사람이 회사에 남아 있어야 그들의 능력에 기대어 자리를 보존할 수 있을텐데, 앞으로는 회사 뿐 아니라 직업군 자체가 사라져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실질적 능력이 아닌 처세와 요령으로 살아남기는 더욱 어려운 시대가 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처음 직업을 갖고 회사에 입사했을 때, 나는 대체되지 않는 실력있는 사람이 되길 소망했다. 내 자리를 지키고 보존할 수 있는 능력에 주안점을 두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때가 되었을 때 옮길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가지 역할만을 고집해서는 안되고 카멜레온처럼 어떤 환경과 조건에서든 거기에 맞는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키는 것을 넘어 옮기고 개척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지금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결국 지금 내 능력을 기반으로 연관된 분야들을 개척하고 거기에 맞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는 사회 공동체적 입장에서 시스템을 어떻게 세워나갈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지만 나는 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예견되는 미래에 대해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가져야 할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가장 뚜렷한 인식의 변화는 대체불가 인재가 되겠다는 생각에서 얼마든지 새로운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인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최소한 '보통 사람들의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고. 앤드루 양, [보통 사람들의 전쟁] 흐름 출판, 2019




Photo by Miguel Brun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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