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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규원 Feb 12. 2022

의대를 가고 싶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는 몰랐다

유치원 때였는데 매달 하는 생일축하시간에는 그달 생일 아이들의 부모님을 초청하여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순서를 가졌다. 나 역시 어머니께서 오셨었고, 나는 큰 절을 드리고 볼에 뽀뽀를 해드렸다. 미리 짜여진 각본대로 한 거라서 쑥스러웠다. 그리고 선생님은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물어봤는데, 나는 그냥 생각나는대로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가끔 유치원에서 역할놀이로 병원놀이를 했었는데 그 때 나는 의사와 환자 역할 중에 의사가 더 좋았던 기억이 나서 그냥 대답했던 것 같다. 그 후에 학창시절동안 나의 장래희망은 50번도 넘게 바뀌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대입시험을 보기도 전에 희망하는 학과를 적어내라고 했었다. 나는 이과반이었기 때문에 마음속으로는 공학계열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당시에는 선생님들이 우리 이과 학생들에게 공돌이들이라고 부르던 것이 그렇게 좋게 느껴지지가 않았었다. 그래서 진학희망 학과에 의예과를 적어서 냈다. 내가 알기로 나 말고도 의예과를 희망한다고 써 낸 친구들이 더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우리 반에서 의대를 간 친구들은 치대까지 포함해서 3명이었다. 그 친구들 중 두명은 지금 의사가 되었고, 다른 한명은 소식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공대생이 되었다. 의대를 희망한다고 써서 내긴 했지만 의사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사실 나는 별로 의사가 되고 싶진 않았다. 그냥 공부를 잘해서 의대에 가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하지만 의대에 갈 수 있는 성적이 나오지도 않았다. 막상 공대에 가서 전공공부를 해보니 공부는 엄청 힘들었는데 흥미도 있었고 적성에도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연구자로 일하고 있다.


과학고로 진학한 학생들 중 최상위 성적을 가진 학생들이 의대로 진학을 많이 한다고 한다. 기초과학 증진을 목표로 설립되어 엘리트교육을 제공하는 학교를 다니고는 의대로 가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여론도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내 삶을 돌아보면 대학진학을 앞두고 내 꿈은 50번이나 바뀌었다. 나처럼 되고 싶은 것이 많아서 이랬다 저랬다 한 사람도 있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뭐가 되고 싶은지 꿈을 찾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자신의 진로를 찾는 것은 어렵다. 당연히 생각이 바뀌고 진로도 변경될 수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결과도 좋아서 과학고를 진학하여 엘리트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과학자가 되고 엔지니어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고 진학이 결정되는 나이는 빠르면 15살이고 보통 16살이다. 그 나이대에 진로가 결정되는 것은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 개인적인 생각에 엘리트교육을 받은 의대생이 많아지는 것을 억지로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가령, 과학고 출신들에게 의대에 진학할 수 있는 비율을 정해버려서 과학고 학생들끼리 경쟁을 하게 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예전에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비행사가 국가로부터 엄청난 지원을 받았음에도 결국에는 우주비행사의 길을 포기한 것으로 인해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비록 원하던 결과는 아니었지만 원론적으로는 개인의 선택을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스템을 생각할 때 그렇게 원치 않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음을 인식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스템에 자본을 투입하는 시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고를 나온 학생들이 모두 의대 진학을 희망한다고 해도 제도를 고쳐 교정하기 보다는 기초과학분야 인재를 키우기 위한 부수적인 노력을 하는 것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원이 있어야 인재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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