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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규원 May 02. 2022

한계를 뛰어넘어 역사를 만드는 사람들

사람보는 눈은 누가 더 정확할까

우리가 어떤 사람의 장점을 파악할 때, 성별에 따라 보는 눈에 차이가 있을까? 이성을 보느냐, 동성을 보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장점을 파악하는 기준이 어떻게 다를까? 혹은 상대방의 약점을 발견하는 것도 성별에 따라서 차이가 나는 것일까? 가령 어떤 여성을 볼 때, 남성이 보는 관점과 여성이 보는 관점이 달라서 남성에게는 매력적이고 선호되는 사람일 수 있지만 여성이 볼 때는 반대가 되는 경우도 있을까? 남성을 보는 경우에도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최선의 경우는, 남성과 여성 어느 누가 봐도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성을 바라볼 때의 관점은 편향될 가능성이 있을까? ‘여자의 적은 여자다, 일명 여적여’ 라든가 ‘남자는 남자에게 관심이 없다’ 라는 말들을 들으면 동성들끼리 서로에게 그리 긍정적인 평가를 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여자가 봤을 때 좋은 여자’ ‘남자가 봤을 때 좋은 남자’가 진짜 좋은 사람이라는 말도 들었었다. 동성을 향한 무관심과 부정적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런 평가를 받는다면, 그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도 일리 있는 생각인 것 같다.


새로 생긴 말 중에 ‘걸크러쉬’ 라는 말은 방송매체에서 흔하게 사용되면서 보이시하고 강한 여성을 주로 지칭하게 되었는데, 실제 뜻은 girl(소녀) 과 crush on(반하다)의 합성어로 여성마저 반하게 만드는 여성을 의미하는 것이다(같은 맥락에서 ‘맨크러쉬’ 라는 말도 미국에서는 종종 사용한다고 한다). 이 말은 남성들이 반하게 되는 타입의 모습과는 또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데, 아마도 성격과 외형 뿐 아니라 진취적이고 리더쉽있는 모습까지 다 포함하는 것일 것이다. 과거로부터 여성들은 사회적인 지위의 한계를 겪어 왔는데, 이제는 공식적으로 그런 한계는 없지만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유리천정이 각계 각층에 존재하고 있다. 역사는 언제나 그러한 한계를 돌파한 사람들이 만들어갔으며, 이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는 그러한 역사가 계속 일어나도록 노력할 의무를 갖는다. 나 역시도 그러한 의무감을 갖고 있다. 적어도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대할 때는 어떠한 사회적 편견없이 동등하게 대하도록 노력하며, 누구에게라도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사람이 발전할 수 있도록 응원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딸과 아들을 모두 가진 아빠로써, 우리 자녀들이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으며 한계를 뛰어넘고 이루고자 하는 바를 반드시 이루어내는 사람으로 자라게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든 정해져 있는 한계란 없으며, 끊임없이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미래에는 반드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해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부모로써 우리 자녀들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다.




Photo by Brett Jorda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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