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하는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독서를 통해 기존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기도 한다. 특히 비문학 책을 읽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의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읽은 책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책은 어느 정도 대중성이 있다는 의미도 되기에 부담없이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런 책들은 다른 사람들이 읽고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을 비교적 찾기 쉽기 때문에 어쩌면 좀 더 균형잡힌 시각을 갖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내가 어느 정도는 익숙한 분야의 책을 읽을 때에는 작가의 의견과 나의 생각이 충돌할 때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첫번째는 기분이 상해 그 책을 계속 읽고 싶지 않으니 책을 덮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다음 다른 책을 찾아 읽으며 다시는 그 작가의 책은 거들떠도 안 보는 것이다. 어차피 읽을 책이 넘쳐나는 상황이니 크게 손해보는 것은 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반복되면 자신의 생각의 틀 안에만 갇히게 되어 균형잡힌 관점을 갖기 어려워 질 수 있다. 또 다른 선택지로는 일단 저자의 생각을 인정하며 그 논리대로 따라가며 책을 읽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저자의 생각이 충돌할 때 의도적으로 저자의 생각에 편을 들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끝까지 다 읽는 것이다. 이 때는 독서의 즐거움이 반감되고 오히려 괴로움이 가중되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럴 때 스스로에게 이 주제에 대한 한 가지 관점을 배웠다고 위안을 삼는 것이 도움이 된다.
두 선택지 가운데 나는 첫 번째 선택을 할 때가 많았다. 가장 큰 이유는 독서가 즐겁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히 제목만 그럴싸한 에세이를 읽을 때에는 기대와 달리 저자에게 공감하지 못할 때가 많아서 읽다 만 책들이 많다. 반면, 어떤 주제에 관해 과학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한 논지를 펼치는 책들은 두번째 선택을 할 때가 꽤 많다. 비록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편향적인 자료들만을 근거로 내세웠더라도 말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독서를 할수록 강화되는 것은 지식을 수용하는 기능이 아니라 비판적인 사고를 하는 기능인 것 같다. 이 지점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주의하는 것이 있는데 내가 읽다 만 책 또는 간신히 읽은 책 한권으로 그 작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이 독자들에게 주어지기까지 작가가 들였을 노력은 존중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글로는 표현하지 못한 작가의 생각을 존중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자세하게 더 많은 자료를 써서 부연설명을 한다고 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작가는 그보다 훨씬 방대한 자료를 찾는다. 자신의 의견과 충돌하는 경우에는 그 의견에 대한 비판까지, 아니면 그 책에 대한 비판까지만 하는 것이 좋다. 작가에 대한 도 넘는 비판은 지나친 것 같다.
사적인 생각.
그럼에도 나는 어쩔 수 없이 꺼려지는 작가들이 있다.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거나 다툼의 여지가 있는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단정적인 문체를 사용하는 작가들이 그렇다. 부족한 자료조사를 기반으로 책을 썼기 때문에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으며, 특히 비전문가들이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 책을 쓸 때에 용감하게도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할 때가 있다. 단정적 표현은 탄탄한 논리와 근거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설득을 강요하는 느낌을 독자에게 줄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