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여유롭게 마무리는 헐레벌떡

8:59 출근 태그

by 서규원

띠링.


휴대전화 알람소리와 함께 수신된 메세지는 호우주의보 경고의 내용을 담고 있었고, 인근 도로가 침수되었으니 조심하라, 일부 지역의 학교는 긴급 휴교를 실시한다 등과 같은 문장들로 채워져 있었다. 어제 작은 우산을 준비하여 초래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아침에 집을 나서며 집에 있는 우산들 중 가장 큰 것을 손에 들었다.


어젯밤 퇴근 길은 우산이 쓸모가 없을 정도로 많은 비가 내려 신발이며 바지며 물에 다 젖었고, 다행히 가방은 방수가 되는 재질이라 겉에만 물이 흘러내린 자욱이 보이는 정도로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기필코 마른 상태로 귀가하고자 했던 의지는 퇴근길 회사 앞 횡단보도를 건너자 마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커다란 버스가 바뀐 신호에 움직이면서 도로에 고인 물을 인도 쪽으로 한바탕 쏟아냈고, 나는 미처 피하지 못했다. 내가 그 물벼락을 앞에서 다 맞는 덕분에 내 뒤에 있던 사람들은 괜찮을 수 있었다. 비오는 날에 여름운동화를 신고 있던 탓에 신발이 가장 먼저 물에 젖었다. 공교롭게도 내게 물을 끼얹은 그 버스를 타야했고, 원래는 3정거정만 가서 내려야 하지만 비도 많이 오고 해서 좀 돌아가는 경로임에도 20정거장 쯤 더 가기로 했다. 옷이 젖은 상태로 지하철의 에어컨 찬바람을 견뎌내고, 지하철을 내려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곳곳에 고여있는 물웅덩이를 지났다. 여전히 거세게 내리는 세찬 비를 맞으며 작은 우산 하나를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그냥 웃음이 나왔다. 어차피 젖은 거 마음만은 좀 편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제의 일을 교훈삼아 신발도 물이 안새는 구두를 신고, 큰 우산을 들고 나왔다. 대충 시간을 계산해보니 여유있게 회사에 도착할 수 있겠단 확신이 들었다. 마침 버스도 제 시간에 도착했고, 앉을 자리도 있어서 더 좋았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버스-지하철-버스 이렇게 교통수단을 갈아타가며 가야 하는 경로인데, 평소보다도 수월하게 대중교통을 갈아타며 이동하였다. 그런 행운 속에서도 내가 탄 모든 버스와 지하철은 평소보다 눈에 띄지 않을만큼 천천히 이동했는지 모르겠다. 출발은 여유로웠는데, 도착은 겨우 늦지 않게 했으니 말이다.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기계들이 아니라 사람들이었다. 유난히 많았던 사람들 틈에서 계단을 오르내리고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시간이 길어진 탓이었다. 다행히 한번도 멈추지 않고 내 사무실이 있는 층에 닿은 엘리베이터 덕분에 제 시간은 맞출 수 있었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출근은 좀 더 여유롭게 해야 한다.


쉬지 않고 오는 비 때문에 고생하는 분들이 많다는 뉴스를 접했다. 이번 비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비교적 피해가 덜한 지역의 소방대에서는 비피해를 입은 지역으로 파견을 나가기도 했다. 정부는 특별지원을 편성하며 도움을 주고자 하는데,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있으니 다른 피해가 더 없기만 바랄 뿐이다. 사람의 일상을 한 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자연의 힘을 다시 한번 바라보며 인간의 무력함과 함께 피해입은 분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게 된다.






사진: Unsplashreza shayestehpo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