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없이 읽는 은밀한 행위
독서하는 사람은 위험한 인물로 간주되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과거에 책을 읽는 사람들은 종종 위험한 인물로 여겨졌다. 독서가들이 권력의 감시를 받으며 요주의 인물이 되었던 이유는 책을 읽는 행위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은밀한 것이 되고부터이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에는 독서 행위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으며 그것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잘 설명하고 있다. 글자가 발명된 이후에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기록할 수 있게 되었는데, 종이가 없던 시절에야 모두에게 보여질 수 있는 동굴의 벽이나 땅바닥이나 때로는 진흙판에 기록을 해야만 했다. 자신만의 기록물을 보존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글자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모든 정보가 사람의 말을 통해 전해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는 것보다 듣는 것이 익숙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글자도 읽고 생각하기 위한 목적보다 말하는 것을 듣고 받아적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글자가 들은 것을 기록하는 목적이 크다보니 기록의 체계는 허술했다. 띄어쓰기도 없었고, 대문자와 소문자의 구분도 없었다. 그 때의 기록은 눈으로 보면서 원래의 의미에 맞게 큰 소리로 잘 읽어낼 수 있으면 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의 독서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모두 있어야지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전문 필사자들이 있어서 화자가 큰 소리로 읽을 때 그것을 띄어쓰기 없이, 정해진 규칙도 없이 연속적으로 기록해나갔다. 화자의 말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두루마리가 더 필요했기 때문에 종이를 이어붙이는 접착제를 만드는 사람이 아주 귀한 대접을 받았다. 이런 방식의 독서가 보편적인 시대에는 혼자서 조용히 책을 읽는다는 것이 불가능하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책을 읽는 것이 위험하다고 여겨질리가 없었다.
책이 위험한 물건으로 여겨지게 된 것은 책이 두루마리 형태를 벗어나고 나서부터다. 로마 황제 카이사르가 두루마리를 처음으로 쪽으로 접어서 자기 군대에 보낸 것을 시작으로 이교도들은 종이를 쪽 형태로 묶어서 옷 속에 숨겨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기록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사적인 영역으로 확장된 것이다. 띄어쓰기는 읽기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위해 필사를 하는 수도사들이 의미에 따라 글자를 나누는 것에서 시작되었는데, 거기에 덧붙여 의미가 끝나는 부분에서 작게 읽는다거나 할 수 있도록 구두점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이 때까지도 독서는 소리내어 읽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독서가들은 표시된 구두점과 띄어쓰기에 따라 읽으면서 '정지와 휴식'이라는 새로운 읽기 기술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읽기 방법이 효과가 좋아서 뜻을 파악하고 의미를 명료하게 전달하는데 매우 유용했다.
읽기 기술의 발달은 점점 소리없는 독서의 발전을 부추겼다. 그러자 독서는 함께하는 행위가 아니라 개인의 은밀한 행위로도 확장되었고, 이런 독서 행위는 더욱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리고 비밀스럽게 공유되는 정보들이 과거에는 미미했던 불순세력들을 집결하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 사람들은 책을 통해 은밀하게 정보를 공유하게 되었고, 권력자들에게는 독서가들이 그들을 위협하는 잠재적 세력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세상을 바꿀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은 지식인 계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권력자들을 견제하고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지켜나갈 수 있는 것도 지식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지식인은 실천하는 독서가이며, 읽는 것에서 그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국민들이 독서를 통해 많은 지식을 얻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신념대로 행동하는 나라가 된다면, 건강하게 발전하는 나라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참고. 알베르토 망구엘 [독서의 역사], 2016. 75-8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