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지 않아도 사람은 기본적으로 배운다. 다만
사람을 잘 설명해주는 특징들 가운데 하나가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지구상에 있는 모든 개체들 가운데 가장 왕성한 활동량을 가진 뇌를 자랑한다. 어떤 종도 사람처럼 높은 비율로 에너지를 뇌에서 소비하지 않는다. 뇌가 하는 여러가지 활동들 가운데 매우 중요한 것이 생각하고 인지하고 기억하는 것이고 배움의 과정이 이러한 과정들을 통합적으로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은 직접 경험을 통해 배우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글을 읽으면서 배울 수 있다. 외부의 거의 모든 자극들이 새로운 정보를 얻고 배우는 데 사용될 수 있다. 그런데 뇌는 자체적으로 어떤 정보에 대해 가치판단을 하지는 않는다. 그 정보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그 정보의 중요성이 큰지 작은지의 여부도 판단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좋은 정보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직은(미래에는 기술적으로 가능할지 알 수 없다) 불가능하다.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다양하고 많은 매체들을 접하고 산다. 정보화시대라는 말은 30년도 더 전부터 들려온 것 같지만 요즘처럼 그 말이 실질적으로 다가오는 시대는 과거에 없었던 것 같다. TV가 처음 등장했을 때, 생각없이 오랜 시간 보고만 있게 만들기 때문에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는 의미에서 '바보상자'라는 별명을 지어 불렀는데 그 때는 TV가 가정당 하나 정도밖에 없었다면 지금은 1인당 1개 이상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시대이고, TV보다 더욱 다양하게 언제든지 많은 정보들을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 뇌도 정보의 가치를 판단해서 필터링을 스스로 할 수 없듯이 기계 역시 좋은 정보만을 사람들에게 제공하지 않는다. 그리고 영상 시청을 통하여 정보를 얻을 경우에는 그 과정 자체가 수동적인 과정일 가능성이 커서 깊이있는 사고과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는 이렇게 얕은 사고과정을 통해 단편적인 많은 정보를 받게 되는 경우를 불빛들만 반짝이는 상태라고 표현했다. 지식의 깊이가 얕고 그 정보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할 확률이 높은 것이다.
독서를 통하지 않고 인터넷이나 방송매체를 통하여 지식을 얻은 경우,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정보만을 얻을 가능성이 높으며(상대적으로 매체에서 제공하는 정보의 깊이는 얕다), 정보의 정확성과 진위여부를 파악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심한 경우에는 책을 읽는 것 자체를 싫어하게 되고 어디 유튜브 영상에서 본 내용이 전부인 것처럼 여기며 그정도의 지식 수준에 스스로 만족하게 될 수가 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사람은 기본적으로 '배움'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읽지 않으면 다른 매체를 통해 배울 수 밖에 없으며, 그렇게 배운 지식은 많은 오류와 오해와 거짓들을 내포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잘못 알려진 지식들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로 확산된다. 그 과정에서 바로 교정해주는 역할을 해줄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계속 주변으로 확산될 것이다. 그래서 잘못 알고 있는 경우의 경로가 지인으로부터 전해들었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만약 그 사람이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을 주변에 뒀다면 그래도 올바른 정보를 얻을 가능성이 높겠지만 역설적이게도 책을 잘 안 읽는 사람 주변에서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을 찾기란 어렵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릴 가능성이 높으니 스스로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내 과거를 돌아보면, 나는 책을 많이 읽지 않았지만 아는 것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대부분 잘못 알고 있었다. 이것 저것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말하기를 좋아하고 가르쳐 주기를 좋아했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잘 모르면서 말한 것도 많았다. 어디서 주워 들은 이야기들, 잘못 이해하고 알려준 것들, 심지어 모르지만 말하다보니 아는 척한 것들도 많았던 것 같다. 마치 찢어진 백과사전(일명 찢백)처럼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틀린 이야기들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반성한다. 독서를 통해 근거 있는 정보들을 모으고, 여러 자료들을 검토하여 종합적인 의견을 낼 수 있도록 더욱 공부하고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다짐한다. 다양한 의견들을 취합해서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식견을 가진 지식인이 모두들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토론도 정확한 근거에 의해 이루어지는 문화가 발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그렇게 되는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길은 독서하는 인구가 늘어나는 길 뿐이라고 생각한다.
참고. 니콜라스 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청림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