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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규원 Sep 26. 2019

군대가 날 빠르게 만들었지

이제는 느려질거다

  대한민국의 군대는 적어도 훈련소 기간동안만큼은 젊은이들의 생활방식을 통째로 바꿔놓는다. 단체생활은 아무리 행동이 느린 사람도 조금은 더 빠르게 만들어준다. 전투화 끈도 빨리 묶게 되고, 침구류 정돈도 빨리 할 수 있게 되며 식사도 빠른 속도로 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빨리 할 수 있는 비결은 함께 움직이기 때문도 있지만 시간 안에 못 할 경우 얼차려를 받기 때문이다.



  나는 군생활을 충청도 논산에 있는 육군훈련소에서 했다. 아무 병과 지원없이 징집되었는데, 훈련 기간이 끝나면 다른 곳으로 갈 줄 알았지만 그곳이 내 자대가 되었다. 훈련병으로 훈련을 받을 때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것 중 하나는 욕과 함께 훈련병을 몰아부치는 기간병들이었다. 흔히 조교라고 불리는 빨간모자를 쓴 사람들이었는데, 실제로 육군훈련소의 조교모는 챙만 빨간색이고 그 외에는 검정색이다. 그들은 군기를 잡을 목적으로 정말 말도 안되게 짧은 시간을 주면서 여러가지 일을 하라고 명령한다. 예를 들면, 1분 안에 빨래 널기, 2분 안에 밥 먹기, 1분 안에 샤워하기 등이다. 나는 실제로 1분 안에 내 빨래를 널지 못해서 빨래줄 밑에서 얼차려를 받았다. 야간 사격훈련 후 샤워를 했을 때는 물을 1분 밖에 못 틀게 했는데 물 틀기 전에 온몸에 비누칠을 다 해놓고 아주 순식간에 몸에 물만 뿌리고 나왔다. 종교행사를 앞두고 출발시간을 맞춰야 한다며 2분 안에 밥을 먹게 하는데 앉은 다음 2분을 주는 게 아니라 배식을 시작하면서부터 시간을 쟀다. 결국 배식을 뒤에 받은 훈련병들은 앉자마자 일어났고, 식판을 반납하면서 밥을 먹었다. 그 때 조교 중 한 명인 윤일병의 말이 더 가관이었다.


"다 못 먹어서 억울하냐? XX 우리는 먹지도 못했어"


  나는 그들이 종교행사 후에 뽀글이를 먹든, 초코파이를 먹든 뭔가를 먹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훈련병은 간식도 줄 때만 먹을 수 있어서 식사시간이 아니면 배를 채울 수 없다. 그래서 빨리 먹는 습관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군대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누구도 급하게 먹어서 체한 사람이 없었다.



  나는 훈련소를 벗어나지 못하고 훈련소의 분대장(조교)이 되었다. 조교가 되자 나도 똑같이 훈련병들을 급하게 인솔했고, 마구 몰아칠 때도 많았다. 한 번은 야간 훈련(아마도 야간 행군)이 끝나고 훈련병들을 인솔하여 샤워장으로 갔는데 순서가 밀려서 우리 소대 훈련병들에게 샤워시간을 충분히 주지 못했다. 당시에 내 훈련병 때의 기억이 떠올랐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처럼 넘어갔던 것 같다.



  제대를 한 후에도 나는 여전히 밥을 빨리 먹는 것이 습관이었고, 이제는 그 습관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한 숟갈 먹은 후에 숟가락을 식탁 위에 내려 놓는 것이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밥을 오래 씹으려고 노력 중이다. 매번 지키는 것은 아니지만 천천히 먹는 것이 조금은 익숙해졌다. 앞으로도 천천히 먹는 게 익숙해질 때까지는 계속 노력할 것이다.




여기는 그 유명한 화생방 교장이다. 야외 훈련은 조교모 대신 하이바를 착용하기도 했다.  이 때는 왕고 시절이다.




Photo by Elle Morr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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