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동시에 사라져 버린 숫자세기가 있다. 부부가 되기 전에는 연인이 된지 몇일이 됐는지가 무척 중요해서 사귄지 50일부터 100일 단위로 숫자를 세서 작게나마 기념하다가 1,000일까지 기념한 후로는 그 숫자세기가 의미가 없어졌다. 연인으로가 아닌 서로의 배우자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고 매년 결혼기념일을 기념한다. 부부가 되면 의미가 없어져버릴 기념일들이었고 지금은 그렇게 기념했던 날들도 아득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다시 우리가 연인사이로 돌아갈 수가 없으니 그때의 기억들은 갈수록 더 커지는 것 같다.
물론 우리 부부는 우리의 특별한 관계가 시작된 날을 잘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풋풋하고 지금보다 더 순수했던 그때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우리가 서로 만나면서 있었던 사소한 일들 하나하나가 이제는 이렇게나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줄은 그 때는 잘 몰랐다. 아마 지금의 사소한 일상들도 시간이 지난 후에는 미소 띄며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될 거라 생각한다. 11년 전 어느 봄날, 더이상 마음을 감출 수 없어 용기냈던 소심한 고백이었지만 그건 내 인생에 가장 잘한 행동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