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처음 다니고 나서는 일기를 쓰는 것이 숙제였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하루하루를 기록해야만 했다. 습관이라는 것이 참 무서운 게 반복해서 한 페이지의 일기를 채워 쓰다보니 매년 4권이 넘는 노트가 쌓였다. 어릴 때 썼던 내 일기장은 예전 내 방 어딘가 책장 한구석에 꽂혀 있다. 절대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줄 생각없이 썼던 일기였는데, 시간이 지나 가족들이 돌려보면서 날 놀림거리로 만들었던 기억도 난다. 그 때는 주로 사건 중심의 일기를 썼었다. 소풍을 갔다거나 형과 싸웠다거나 친구 집에서 게임을 했던 것 등 주로 내가 그날 가장 인상적인 활동을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기록한 것이었고, 당시의 내 감정과 생각은 아주 일부분 포함되어 있었다. 나중에 다시 펴서 읽어본 적도 없는 기록들이 예전 내 일기장에는 고스란히 적혀 있다.
나는 본능적으로 기록하는 것에 끌렸던 것 같다. 항상 생각이 많은 편이었던 나는 뭔가를 적어갈 때 내 생각이 정리되는 듯한 희열을 즐겼다. 어느 때는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나는대로 적어보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에 드는 글들을 그대로 따라 적어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잘 쓰고 싶다거나 정확한 근거가 있는지 등의 것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차피 나 혼자 읽을 것인데, 내 맘대로 쓰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숙제를 위한 일기쓰기가 더이상 필요하지 않았던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쓴 일기는 사건 중심이 아니라 거의 내가 생각하는 마음과 감정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때로는 일기를 씀으로써 평소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내 심리상태를 글로 적기도 하고 그러면서 내 자신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때의 일기에는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한 나의 마음이 많이 표현되기도 했다.
내가 글쓰기를 좀 더 의식하면서 쓰게 된 것은 나의 생각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면서부터다. 그 계기가 된 것은 교회에서 시작하게 된 성경공부였는데, 수련회를 가면 조를 나눠서 아침마다 함께 모여서 그날의 성경 말씀을 읽고 그것에 대한 자기 생각을 적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자기가 적은 내용을 중심으로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자연스럽게 글을 좀 더 신경써서 쓰게 되었고, 나는 꽤 오랜 기간동안 매일 읽은 성경말씀을 다른 사람과 나누었다. 그리고 나와 가장 많이 성경말씀을 나눴던 사람과 결혼을 했다. 매일의 말씀을 읽고 기록하는 것은 14년 전에 처음 시작해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고 해오고 있는 일이다. 나는 이런 기록이 내 인생을 대변해주는 나의 역사라고 자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