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홀연히 떠난 철학서 토론 모임의 일원이던 그녀를 추모하며
지나갈 거라 믿었던 슬픔보다
조금 더 큰 슬픔을 남겨둔 채
당신은 바람처럼 떠나갔어요
말을 고르던 입술도,
웃음의 온기도
모두 한순간에 다 놓았습니다
남겨진 우리 철학서 크루는
당신이 앉던 자리 하나를 비워 둔 채
다시 그 자리에 모였습니다
당신 쪽으로 몸을 기울이던 습관이
아직 남아 있어
침묵마저 멈춘 시간이었습니다
철학서를 펼치면
문장 사이마다 당신의 숨결이 끼어들고
질문은 당신의 답인 듯 착각했습니다
삶이 무엇이냐 묻던 당신의 목소리는
늘 낮고 단단했어요
삶은 아마도
서로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일,
서로의 어깨를 빌려
잠시 쉬어 가는 일이라고,
괜찮아요, 괜찮아요
당신이 늘 하던 말이지요
당신의 온기에 감동하던 순간들
그 소박한 진심이
우리 크루를 진하게 물들였습니다
죽음은
남겨짐의 다른 이름이라고,
당신은 떠났지만
당신이 남긴 질문과 웃음과
당신의 여백은
우리 크루의 오늘을 또 밀어 올립니다
별은 슬픔의 총량만큼 밝다지요
밤하늘이
그만큼 빛나는 이유겠지요
우리는 당신을 지나고
당신은 우리를 지나
또 세상을 향해 걸어갑니다
삶이 뭘까요
그리고 죽음은 또 뭘까요
답은 아직 모르지만
몸을 기울여 듣고,
어깨를 내어주고,
괜찮다를 연습하며
그렇게 우리 크루는
당신의 온기를 품고
내일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