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
남자가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출근길이 두려웠다. 직장 상사의 폭언 때문에 시달렸다. 어느 날, 회의실에서 이유 없는 질책 끝에 날아든 뺨 한 대. 그 순간 남자는 더 이상 울분을 참지 못하고 그는 사표를 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뒤, 남자는 비슷한 동종업계 회사 사장자리까지 올랐다. 많은 직원의 삶을 책임지는 자리에 올랐다.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았던 상사는, 은인이었을까 원수였을까.
종종 삶을 결과로 말한다. 성공은 미화되고 고통은 서사로 바뀐다. 하지만 그 순간 고통스러운 당사자의 시간은 이야기처럼 간단하지 않다. 뺨을 맞은 수치와 울분을 참아내던 수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그 시간을 견디는 동안 그는 단련하는 기회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이 그리고 재수 없게 뭣 같은 상사를 만났을까"라고 세상이 잘못됐다고 느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 역시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났을 때 그는 실패자였다. 그러나 훗날 그는 말했다. 애플에서의 퇴출이야말로 아이폰이라는 새로운 씨앗이 되었다고. 그렇다면 그를 내쫓은 것은 은인이었을까. 잡스를 성장시킨 현명한 조력이었을까. 그저 그 순간, 자신들의 판단을 따랐을 것이다. 시간은 결과를 깊게 의미를 두지만, 삶은 언제나 과정 속에서 시리고 아프다.
한 남자는 무릎 부상으로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 잘못된 수술로 운동선수의 꿈을 접어야 했다. 그는 절망했다. 세상을 저주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말한다. 그 의사가 고맙다고. 그는 운동선수는 재활 용품을 만드는 중소업체 사장이 되었다. 성공한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크게 의미를 둔다. 상처는 그때를 잘 설명해 주고 또 다른 삶의 이유를 얻는다. 하지만 그 고마움은 결과가 만든 해석일 것이다.
삶에는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 왜 하필 나였는지, 왜 그 사람이어야 했는지, 왜 그 시점이었는지 알 수 없는 일들. 흔히 그런 만남을 악연이라 한다. 그러나 조금 더 멀리서 보면, 인연은 선과 악으로 나뉘지 않는다. 삶을 살다 보면 만나는 것이고 삶의 연결일 뿐이다.
지금 누군가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 누군가를 괴롭히는 상사 상처를 준 친구, 등을 돌린 인연은 살다 보면 만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살면서 내 앞에 걸림돌이 아니라, 그 시간을 통과하며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일 것이다.
어쩌면 모두가 세상이라는 거대한 연극 무대에서 저마다의 배역을 충실히 연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조력자의 역할을, 누군가는 방해꾼의 역할을 맡는다. 그 장면 속에서 울고, 분노하고, 흔들린다. 그러나 막이 내려간 뒤 남는 것은 역할이 아니라, 그 장면을 견딘 나의 내면일 것이다.
인연은 우연처럼 다가오고 그 우연은 늘 나를 변화시킨다. 어떤 인연은 나를 부드럽게 만들고, 어떤 인연은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꽃을 건네는 손도 인연이지만, 등을 떠미는 손길도 인연이다. 차이는 단 하나 그 만남을 해석하는 시점이다.
지금은 원수처럼 보이는 사람이, 훗날 돌아보면 나를 다른 길로 이끈 계기였음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다만 그 만남을 통해 성장했다면, 그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삶은 언제나 뒤늦게 의미를 준다. 앞으로 나아갈 때는 알 수 없고, 돌아볼 때에 이해한다. 그래서 인생은 현재형의 질문이다.
오늘의 고통이 내일의 서사가 될지, 아니면 그저 지나간 상처로 남을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인연을 통과해 온 나 자신의 방향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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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힘들게 한 그 사람이 누구였든, 그 만남이 무엇이었든, 지금도 조용히 삶을 완성해가고 있다고. 언젠가 뒤돌아보며 말하게 될 것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장면 역시 내 삶의 한 페이지였다고.
그리고 그 페이지를 올바르게 넘긴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