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도시는 춥다

길고양이를 돌보는 여인

by 현월안




겨울 도시는 더 춥다. 바람은 콘크리트의 모서리를 더 날카롭게 만들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더 안으로 숨어든다. 그때 종종 마주치는 눈빛이 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의 어둠 속에서, 탐색을 하는 듯 스쳐 지나가는 길고양이의 눈빛이다. 추운 겨울 길에서 서성이는 모습은 왠지 모를 슬픈 그림자가 따라온다.



길고양이라는 이름은 왠지 슬프다. 집이 아닌 길에서 서성이는 존재. 누군가의 선택으로 버려졌을 수도 있고, 도시 주변에서 자생하고 번식했을 생명. 어떤 고양이는 사람의 품으로 들어와 반려가 되고, 어떤 고양이는 야생으로 사람의 주변을 맴돌며 살아간다. 이들은 자연과 문명 사이, 소유와 방치 사이에 놓인 경계동물이다.



도시는 인간이 만든 거대한 장치다. 커다란 도로, 쓰레기와 불빛, 계절의 속도를 바꾸는 문명이 촘촘히 얽혀 있다. 길고양이는 그 장치 틈에서 살아간다. 주차장 속 자동차 바닥, 여름의 그늘, 밤마다 쌓이는 음식물의 흔적 언저리. 그 삶은 독립적이면서도 인간에게 기대어 살아간다. 그래서 길고양이를 대하는 것은 단순한 호불호를 너머, 세상에 대한 책임의 윤리를 묻는다. 누군가의 생존 조건이 되었다면, 그 조건에 대한 최소한의 돌봄은 의무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길고양이를 돌보는 것에는 늘 논쟁이 따른다. 먹이를 주는 일이 윤리인가, 문제를 더 키우는 것인가. 소음과 위생, 개체 수의 증가를 걱정하는 목소리와, 생명이 배고픔을 외면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맞선다. 논쟁은 늘 결론이 없다. 선의가 지속되려면 넓은 의미 선이 있어야 할 것이다.



고양이에게 중성화는 번식보다 더 잘 돌보겠다는 선택일 것이다. 인간이 만든 환경의 책임을 나누는 방식이다. 생명을 통제하려는 의미보다 고통을 줄이려는 윤리가 아닐까 싶다. 한 생명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큰 책임이 따르는지 알게 되는 일이다.



동네에도 주기적으로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여인이 있다. 그녀의 손길에 결사반대를 하는 시선과 여전히 찬반으로 나뉜다. 추운 겨울 길고양이와 마주치는 순간은 생명의 윤리를 생각하게 된다. 무시할 것인가 아니면 감싸 안을 것인가라는 많은 물음이 들어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존은 따뜻한 관심에서 시작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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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도시에서 길고양이는 여전히 경계에 있다. 그리고 그 경계는 양면이 있다. 조금 더 책임의 쪽으로 몸을 기울일 때, 경계는 허물어진다. 길 위의 생명과 인간의 삶이 완전히 어우러질 수는 없을지라도, 삶은 생겨난 그대로의 모양에서 함께하는 상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