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죽을힘을 다해 살아내는 것이다
야구선수출신 김병현이 과거 자신이 뛰었던 미국 메이저리그 팀을 20여 년 만에 찾아가는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김병현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뜨겁게 숨 쉬던 무대. 오랜만에 다시 선 그곳에서 그는 옛 동료들과 포옹했고, 팬들의 환호에 손을 흔들었다.
그는 카메라에서 등을 돌리더니 갑작스레 울음을 터뜨렸다. 흐느끼며 오열을 했다. 눈물은 쉬 멈추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당황했다. 슬픈 상황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기쁨의 눈물이라고 하기엔 감정의 파도가 너무 깊고 거셌다.
아마도 그는 그날, 자신이 가장 찬란하게 빛나던 그 시간과 정면으로 마주했을 것이다. 젊음과 가능성과 용기가 뒤섞여 있던 시절일 테고 가장 빛났던 때이고 그의 인생에 가장 화려한 화양연화가 아니었을까.
누구나 인생에 화양연화는 있다. 그런데 그 한가운데에 있을 때 누구나 그 화양연화를 알아채지 못한다. 그때 시절은 바쁘고 불안하다. 더 성장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현재를 밀쳐두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붙잡느라 때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그러다 시간이 훌쩍 지나고 보면 알게 된다. 오래된 노래 한 소절과 낯익은 기억이 맞닿을 때, 혹은 다시 찾게 되는 추억의 장소에서 회상하게 된다. 그때가 화양연화였구나라고. 이미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거리에 와버린 뒤에야.
만약 기적처럼 시계를 되돌릴 수 있다면 어떨까. 그 화려했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 그 순간이 얼마나 귀한지 알고 산다면 정말 다르게 살 수 있을까. 하루를 더 음미하고 덜 불안해하며 더 사랑하고, 덜 아쉬워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삶에 밀려 또다시 바쁘게 살 것이다. 또다시 불안해할 것이고, 또다시 미래를 향해 달릴 것이다. 인간은 현재를 살고 있지만 현재를 알아보는 능력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의 소중함은 늘 시간이라는 필터를 통과한 뒤에야 정확히 보이고 또렷해진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모르는 채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지나간 뒤에야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앞을 알 수 없기에 선택하고 또 확신할 수 없기에 도전하고, 완벽하지 않기에 울고 웃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인생은 미리 알 수 없는 없기에 또 죽을힘을 다해 끝까지 도전하는 것이다.
그 야구선수의 울음에는 많은 의미가 들어있다. 그것은 모두가 한두 번은 언젠가 마주하게 될 장면이다. 누구나 자신의 화양연화 앞에서 또 그 기억 앞에서 잠시 말을 잃는다.
그러나 삶은 충분히 살았다고 말할 수도, 그렇지 못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때의 그 시간은 그것으로 최선이었으니까. 그때의 불안은 그때의 진심이었고, 그때의 분투는 그 시간의 최선이었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그 화양연화가 있었기에 회상할 수 있고 지금 순간을 소중히 보낼 수 있는 삶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시간이 훗날 어떤 이름으로 불릴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누구나 마주한 삶은 죽을힘을 다해 살아낸다. 그래야 삶은 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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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늘 한 치 앞을 모른다. 그래서 아름답고 그래서 아프다. 그리고 바로 그 불확실함 속에서 저마다의 화양연화를 지나고 있다.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