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핏 스치는 겨울의 기억

종갓집 종부 엄마의 겨울

by 현월안




유년시절 엄마의 겨울은 혹독했다. 노루꼬리만 한 겨울 볕이 마당에 내려앉아 있을 때면, 겨울 볕은 언제나 귀했다. 겨울의 볕은 온전히 주어지지 않고, 늘 빌려 쓰는 것처럼 짧았다. 잠시 고개를 내밀었다가 이내 사라지는 햇살을 놓칠까 싶어 엄마의 마음은 조급해졌고, 볕을 향해 방향을 쫒았다. 볕바른 마당에 빨래를 널어놓고, 엄마는 이리저리 빨랫줄을 따라 옷가지를 돌려 눕히곤 하셨다.



유년의 겨울은 아련하게 밀려오는 장면이 있다. 엄마의 겨울은 빨래와 사투였다. 세탁기가 없던 시절 종갓집 종부였던 엄마에게 겨울 빨래는 혹독한 노동이었다. 그것은 사대부 집안의 시간과 체온을 지키는 일이었고, 사람들의 하루를 다음 날로 무사히 넘겨주는 일이었다. 층층시야 쌓인 빨랫감은 산처럼 높았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종가 행사 때 두루마기를 입던 시절에는 옷의 무게만큼이나 묵직했다. 세탁기가 없던 시절, 얼음장을 깨고 길어 올린 물에 손을 담그는 일은 각오 없이는 할 수 없는 노동이었다. 엄마의 손끝이 얼어붙고, 감각은 사라지기 일쑤였지만 엄마는 멈추지 않았다. 꽁꽁 언 겨울 빨래는 어린 내 눈에도 유난히 고단해 보였다.



해가 기울 무렵이면 엄마는 분주했다. 한뎃잠에라도 서리를 맞힐까, 빨랫줄을 몇 번이고 살폈다. 살얼음이 언 채로 꾸덕꾸덕해진 옷가지들을 낚아채 안마당으로 들여오고, 큰솥에 불을 지폈다. 솥뚜껑 위에 반듯반듯 옮겨 눕힌 겨울 옷가지들은 서서히 김을 올리며 마르기 시작했다. 가슬거리는 천 사이로 불내가 설핏 배어 나왔다. 그 냄새는 매캐하면서도 따뜻했고, 삶의 가장 깊은 자리에서 나는 냄새 같았다. 불과 물과 햇볕을 빌려, 엄마는 혹독한 그 겨울을 건져냈다.



겨울 볕을 그토록 고마워하는 마음은 종갓집의 내력이었을까. 집안의 어른들이 벗어 놓은 두터운 두루마기와 겉옷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시간의 무게와 책임이 엉켜 있는 물건들이었다. 그것을 깨끗이 씻고, 얼지 않게 말리고, 다시 따뜻하게 입혀내는 일은 종부 엄마의 몫이었다.



겨울 옷솔기에 남은 매캐한 불내와 비릿한 빨랫비누 냄새는 지금도 선명하다. 누군가 붓을 쥐여 준다면, 나는 그 냄새를 그려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색이 있다면 아마도 회백색과 옅은 황톳빛 사이일 것이다. 냄새는 기억보다 오래 남아, 시간을 건너 나를 데려간다. 아마도 사람이 한 생을 견디며 남긴 엄마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곧 설날이 다가온다. 얼다 녹다 지치는 겨울 끝물에 설날이 돌아오는 이유를 이제는 알 것도 같다. 설은 새로움의 시작이기 전에, 오래된 것들을 불러내는 날이다. 멀리 떠난 일들에 안부를 묻고, 부재를 조심스레 어루만지라고 계절은 인간에게 시간을 준 것이다. 이제는 떠나고 없는 사람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장면들이 이맘때 겨울이면 설핏설핏 스친다.



이제는 모두 떠나고 없는 기억이지만, 가끔은 엄마를 따라 겨울볕을 실컷 들여놓고 싶을 때가 있다. 짧은 볕이 붐비는 거실 끝에 앉아, 얼다 녹다 꿉꿉해진 마음을 나도 돌려 눕혀 본다. 삶은 늘 한쪽만 말라서는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늘진 마음도 볕을 쬐어야 하고, 얼었던 감정도 천천히 녹여야 한다. 가슬가슬 소리가 나도록, 얼다가 녹으며 잘도 마르던 그 겨울 옷가지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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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런 날이다. 아련하게 떠오르는 엄마의 겨울이 한 단면으로 다가오는 날. 엄마가 고단했을 그 시간은 나의 감각으로 기억하는 가장 또렷한 삶의 현상이다. 책임은 말보다 손에 먼저 남고, 사랑은 온기보다 냄새로 오래 남는다는 것을 그때 배웠다. 종갓집 종부 엄마의 묵직한 책임, 그 겨울 볕 아래에서 말리던 빨래는 세상의 모든 철학이 담겼다. 한 사람이 한 집안을 한 계절을, 또 한 시대를 어떻게 건너왔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