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하게 팥죽 한 그릇 만들어 먹으면별미고 특별했는데 요즘은 쉽게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되었다 예전엔계절 절기에 맛을 볼 수 있는 음식을,엄마가 정성 들여 만드셨고그특별한 날을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먹거리가 풍족하지 않았던 때에 맞이하는 별식은 지금의 그 어느 음식보다도 맛있었다
추운 겨울 눈이 소복하게 쌓이던 날, 엄마는 정성 들여 동지 팥죽을 만드셨다 아주 오래전 그 팥죽은 그냥 팥죽의 의미를 넘어선 가족의 건강과 한해 무사하기를 바라는 엄마의 간절한 바램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깨끗한 마음으로 새하얀 두건을 쓰고 뽀얀 광목 앞치마를 두르고 정성 들여 팥죽을 만드셨다 김이 퐁퐁 나고 하얀 눈이 새하얗게 내리는 그날의 풍경은 한 편의 동화처럼 내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편안함이다
가족 건강을 간절하게 바라는 엄마의 기도는 팥죽을 만드는 내내 경건하게 이어가셨다
가장 알맞게 맛있을 그 첫 한 그릇을 찻상에 정갈하게 차려서 대문 앞과 장독대에 놓아두셨다 그리고는 집안 곳곳에 사방에 한술씩 떠 놓았다
그리고는 간절히 두 손을 모으고 가족의 안녕을 바라셨다
매번 마음속으로 시작을 해서 작은 소리가 들릴만큼 많은 바램을 쏟아내셨다 종갓집 종부의 삶이 어찌 간단했겠는가 수많은 집안사람과 소소하게 얽히는 일들과 주변의 일가는 더러 배가 고픈 사람이 있었으니,그날의 팥죽은 삶을 이어가야 하는 하루 양식이었다 종갓집에서 꼭 해야만 하는 동짓날 행사였으니 그날 종갓집 종부 엄마의 고단함을 어찌말로다 하겠는가
동짓날 기도는눈물이 한 방울 맺힐 만큼 간절함을 토해내시고 돌아서시며 환하게 미소 짓던 엄마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마치당신이가족과 종가의안녕을위해서 기도셨으니
'모두아무 탈이 없을 거야!' 하는 안도감의 미소였을 것이다
그때엄마의 마음 가짐은 가족의 건강을 대표로 책임지고, 마음속으로 주문을 걸듯이 경건함을 주도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종갓집 곳간을 책임지고 있으셨으니, 그 무거운 발걸음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소임이었을 것이다
(동지 팥죽 만드는 법)
팥의 종류는 두 가지다 붉은팥과 연두색 팥인데 팥죽을 만들면 두 가지 모두 붉은색이 난다 팥의 종류일 뿐 맛의 차이는 없다
먼저 팥을 깨끗하게 씻는다 씻은 팥을 물에 푹 잠기게 물을 붓고 끓인다 30분 정도 팥을 끓이면 약간 익게 된다 팥을 소쿠리에 건져서 식힌 다음 믹서기에 곱게 갈아 놓는다
찹쌀가루에 뜨거운 물을 붓고 익반죽을 해서 새알을 만들어 놓는다 (새알 만들어 놓은 것 방앗간에서 사면 손쉽고 편리함)
(쌀을 넣고 싶다면 미리 쌀을 불려야 한다 나는 쌀을 넣으면남아서 두고 먹을 때, 쌀알이 너무 퍼져서 떡진 것이 싫어서 넣지 않음)
믹서기에 갈아놓은 팥을 큰 웍에 넣고 끓인다 팥을 삶았던 물을 그대로 넣고, 물의 농도는 추가해서 맞추고 중간불에서 눌지 않게 끓여낸다 새알을 넣고 새알이 익으면 완성이다 소금과 설탕을 조금 넣고 먹으면 된다
번거로워서 그렇지 생각보다 팥죽 만들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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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팥죽을 만들어 먹는 것보다 팥죽은 사서 먹는 것이 세상 편하다 바쁘게 살아가는 요즘 시대에,간편하게 한 그릇 사서 먹는 것이 값싸고 경제적이다
그런데 나는 종갓집 종부 엄마가 하시던 그대로 해보고 싶고, 엄마가 하셨던 요리가 '형체 없이 사라지는 것'이 조금 아쉬워서애써 만들어 먹는다 해마다 만들어 먹을 계획이다 엄마가 알려주신 비결을 기록해 둔 요리 노트를들춰보고,그 옛날 감각으로 느꼈던 나의 기억을 더듬어서,엄마요리를 브런치에 기록해 두고 싶은 마음이다
계절마다 나오는 먹거리를 가지고 엄마가 하시던 대로만들어 보고 엄마의 삶을 기록하고 싶고,그때 어릴 때 느꼈던 감정을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