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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월안 Dec 12. 2023

  옥수수가 들어있는 '노란 호박죽'

종갓집 종부 엄마 요리 따라 하기

    단호박 한 박스가 택배로 왔다 올해 두 번째 택배가을에는 고구마를 상자나 보내주어서 맛있게 먹고 있는데, 또 단호박을 한 박스를 받았다 단호박이 얼마나 탐스럽고 예쁘던지 바라만 보아도 기분이 좋았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매년 받아먹기가 미안한 마음이다 어느덧 부부가 농사를 하기에는 버거울 나이일 텐데, 매번 보내줘서 고마운 마음을 너머 이젠 걱정이다 이제는 보내지 말라고 사정은 하는데도 기어코 또 보내주신 보내줘서 반갑고 고마운 마음과 매번 받아먹는 미안한 마음이, 서로 섞여 있어서 생각 속에서 충돌이 일어난다 많은 생각을 내게 던져주는 것 같아서 때로는 숙연하게 다가온다

    택배를 보내주는 부부와의 인연은 꽤 오래되었다 십여 년 전 채무관계로 시작되었다 부부에게 아파트를 매도하게 되었고, 작지도 크지도 않은 남은 잔금을 이사 후 '한 달 뒤에 주면 안 되겠냐'며 사정을 했다 믿고 그러라고 했던 것이 약속을 못 지키면서 5년간 푼돈은 받아야 했던, 채무관계로 인연이 된 부부다


    5년이라는 채무 변제 시간 속에는 많은 일들이 함축되어 있약속 불이행과 연락이 되지 않던 일들... 그 속에는 말로 쉽게 하지 못할 만큼 찐하게 서글픈 일들이 녹아있다


    이제는 모든 기억 희미해지고 세월이 훌쩍 지나서 잊힐 만도 한데 일방적인 선물 공세로 인연은 계속되고 있다 흔히 보통사람들은 그렇게 채무관계가 끝나면 잊히는데 분들은 인연이 질기다

아주 대단한 집념이다

예전에 채무가 '미안하고 고마워서' 그 긴 인연을 길게 끌고 가는 것을 보면, 무엇으로도 해석이 되질 않는다

나 같아도 보통사람이 하는 것처럼 채무관계가 끝나면 그것으로 그만인 것처럼 끝낼 것 같은 생각이다 그런데 이분들은 질기게 오랜 세월 동안, 고맙게도 농사지은 것을 보내준다 

'그렇게 고마웠을까?...'

'그렇게도 미안한 마음이었을까?...'

부부가 적잖은 나이라서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사람이 가져야 하는 고마움의 기본 도리'를 충분히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마치 큰 생각을 가진 사람들 같아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부부에게서 보이는 인상과 말투에서 느낌은, 정말 선하고 착한 사람들이다

그때에 그댁은 큰아들이 하던 사업이 망해서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 온가족이 함께 어려운 시기가 한꺼번에 닥쳤던 것이다 어쩔 수없이 서울을 떠나 시골 골짜기에 터를 잡고 살게 되었던 것이다

삶이 한때 폭풍이 몰아쳐서 부부의 뜻대로 되지 않았을 뿐, 아마도 삶을 속이고 싶지 않았다고, 진심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충분히 넘치도록 부부의 뜻이 전달되어 그 맘을 알고 있으니까, 이제 그만 그 손길 거두어들여도

이미 넘쳤다 부디 부부가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올해도  하던 것처럼, 부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할까?' 

따스하게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브런치 공간에 부부가 보내준 선물을 자랑하고 싶고, 부부의 깊은 뜻을 소개하고도 싶고, 보내준 그것을 가지고 종갓집 종부 엄마가 하시던 방식대로 요리를 하고...

 삶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도 모르게 흐르는 흐름이 있다는 것, 설명하기 힘든 일들 투성이다 삶은 인연에서 인연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호박죽 만드는 법)

    호박죽 재료로는 단호박과 늙은 호박 두 가지가 있다 단호박은 단맛이 많고 색이 노랗고 이쁘다 늙은 호박은 단맛이 덜하고 색깔이 엷 둘 다 호박죽 만들어 먹는 데는 좋은 재료이다

먼저 호박 껍질을 깎고 속을 제거한다

깨끗이 씻어서 찜기에 살짝 쪄낸다 살짝 찌는 것은 믹서기에 잘 갈리도록 하기 위해서다

(찌지 않고 생으로 믹서기에 갈아도 됨)

찹쌀을 적당량 불려서 믹서기에 갈아 놓는다

갈아 놓은 호박과 찹쌀가루를 섞고, 적당하게 물을 붓고 중간불로 끓여낸다 뽀글뽀글 끓으면 완성이다

입맛에 맞춰서 소금과 단맛을 조금 넣으면 된다

종갓집 종부 엄마 호박죽이 다른 것은

그 옛날 엄마 호박죽에는 옥수수 알이 들어갔

옥수수 알을 따서 그대로 넣으면 안 되고, 방앗간에 가서 한 겹을 벗겨내야 부드럽게 먹을 수 있다

다행히도 지금은 옥수수 껍질을 벗겨 놓은 것을 온라인에서 팔고 있다

껍질을 벗긴 옥수수를 따로 삶아서 물기를 뺀 후 호박죽에 넣어서 조금 더 끓여내면 호박죽 완성이다

옥수수와 호박죽은 너무 잘 어울리는 조합이고 옥수수 알이 톡톡 터지는 맛은 정말 고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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