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촌으로 내려간 작가

자연이 아름다운 외딴 시골 깡촌으로 내려간 작가

by 현월안




자연이 아름다운 외딴 시골 깡촌으로 내려간 작가가 있다. 이른 은퇴를 하고 남편의 고향 마을로 이사간지 이년이 됐다. 그녀는 계절의 숨결이 손에 잡힐 듯한 곳에서 산다. 새벽이면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저녁이면 산자락이 천천히 어둠을 받아들이는 곳. 청정 지역에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가끔 서울에 올라올 때마다 지인들이 매번 그녀에게 묻는 말이 있다. "그런 곳에서 살면 글이 더 잘 써질 것 같아요." 그녀는 웃는다. 그리고 조용히 덧붙인다. "자연은 아무 문장도 대신 써주지 않더라"고.



흔히 사람들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곧바로 문장이 되리라 믿는다. 고요한 숲과 푸른 하늘, 눈부신 햇살이 자동으로 영감을 가져다주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자연은 아름다울 뿐이고 거기에 있을 뿐이다. 바람은 스치고 나무는 자랄 뿐, 계절은 스스로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 앞에 선 내가 흔들리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 모든 것이 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자연을 환상처럼 떠올리는지도 모른다. 손에 쥔 스마트폰 하나로 세상의 소식이 밀려드는 세상. 잠깐의 고요도 허락되지 않는 일상 속에서 느림과 회복이라는 단어는 위로의 희망이 되었다. 그러나 시골에 산다고 해서 소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또렷하게 들리는 것은 자기 안의 소리다. 숨겨두었던 불안과 공허, 설명되지 않는 질문들. 자연은 그것을 잠재우지 않는다. 더 피할 수 없게 만들 수도 있다.



얼마 전 어느 작가의 '봄 이야기'를 읽었다. 그가 기다렸던 봄, 실망했던 봄, 우연히 발견한 봄에 대한 기록이었다. 그 글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단단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계절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그가 통과한 시간의 증언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봄은 풍경이 아니라 변화였다. 기다림 속에서 조용히 달라진 자신에 대한 자각이었다.



아마도 자연을 배경으로 한 글에서 감동을 받는 이유는, 나무와 꽃 자연의 그 맑음을 보고 그것을 감각하는 떨림 때문이다. 대상이 나를 통과하고, 나 역시 대상을 통과하며 서로의 온도가 뒤섞이는 순간. 그때 비로소 글이 태어난다.



'스피노자'는 존재를 관계 속에서 이해했다. 하나의 존재는 다른 존재와 만날 때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의 철학을 빌려 말하자면, 글쓰기는 만남 이후의 변화다. 어떤 사물, 어떤 사람, 어떤 계절과 스친 뒤 더 이상 예전의 나로 머물 수 없게 되었음을 아는 순간. 그 미세한 이동을 붙잡아 두는 행위가 글쓰기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감정을 은유로 꺼내놓는 일이고, 변화의 방향을 감지하는 일에 가깝다. 관찰자가 되어 멀찍이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으로 들어가 흔들리는 자신을 인정하는 일이다. 글 속에는 결론보다 흔적이 남는다. 나와 그 세상에서 통과한 자리, 그 마찰의 온기와 상처가 고스란히 배어든다.



오늘 아침에 오목공원 산책을 했다. 아침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아직 차가운 공기 속에서 희미한 봄의 냄새를 맡는다. 얼어붙은 흙 아래에서 무언가가 밀어 올리는 힘.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움직임. 그 순간 안다. 계절이 바뀌는 것이고 또 나의 감각이 조금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글쓰기는 그 달라진 거기서 시작이다. 이미 정리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미세한 떨림에서. 겨울이 완전히 물러나기 전, 봄이 확실히 자리 잡기 전의 어정쩡한 시간 속에서 조금 더 민감해진 그 시간. 무엇이 끝나고 무엇이 시작되는지 명확하지 않은 경계에서.



자연은 문장을 써주지 않는다. 그러나 나를 흔들어 깨운다. 그 흔들림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갈 때, 비로소 한 줄이 생긴다. 그것은 풍경의 기록이 아니라, 변해가는 나의 기록이다. 얼었던 것이 녹으며 물이 되듯, 단단했던 생각이 풀어지며 언어가 된다.



글쓰기의 힘은 세상을 설명하는 데 있지 않다. 세상과 만난 뒤 달라진 나를 알아보는 데 있다. 그리고 그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데 있다. 겨울을 통과해야 봄이 오듯, 침묵을 지나야 문장이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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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기다린다.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이 첫 문장으로 차오르기를. 계절이 건너오는 길목에서 조금 달라진 나를 만나기를. 그렇게 우연한 시간이 한 편의 글이 된다. 그리고 그 글은 또 다른 누군가의 시간을 조용히 흔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