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불안과 기대
강남 어느 아파트 매물 소개에 이런 문구가 붙었다. "자녀 두 명 모두 SKY 의대를 보낸 기운 좋은 집."
같은 평형, 같은 동, 같은 층인데도 값은 수억 원이 더 프리미엄이 붙었다고 한다. 남향보다 강력하고, 한강 조망보다 비싼 것이 합격의 기운이라니. 아파트 평당가에 운기까지 반영되는 풍경이 조금은 낯설기도 하다.
집이 아이를 의대로 보냈을까. 아이가 집의 가치를 끌어올렸을까. 책상의 방향이 성적을 바꾸고, 거실의 채광이 수능 등급을 밀어 올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알 길은 없다. 그럼에도 기운 좋은 집이라는 말 앞에서 사람들은 잠시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도 그 말속에 숨은 마음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기운을 사고 싶은 마음. 불확실한 미래를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 실거주가 아니라 실적을 사고 싶어지는 욕심, 평수만큼 스펙을 확장하고 싶은 욕망이 어느새 4억 원의 프리미엄이 되었다. 한때는 역세권이 프리미엄이었고, 학군이 프리미엄이었다. 이제는 합격 사례까지 프리미엄이 되는 시대다.
아파트는 콘크리트로 세워졌지만, 그 가격을 밀어 올리는 것은 인간의 불안과 기대다. 흔히 집을 사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미래의 가능성을 사고 있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 학군을 따라 강남으로 이사를 갔던 한 가정의 소식이 전해졌다.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찾아 이사한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뜻밖의 화재 사고로 한 여학생이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였다. 그 짧은 뉴스를 듣는 순간 마음 한편이 먹먹해졌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움직였던 발걸음이, 그토록 허망하게 멈출 수도 있다는 사실 앞에서 인간의 계획이라는 것이 얼마나 연약한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인간은 늘 더 좋은 곳을 향해 움직인다.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집, 더 좋은 환경. 그 움직임의 밑바닥에는 언제나 같은 질문이 들어 있다. 어떻게 살아야 더 나은 삶일까.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자리를 옮기고 조건을 바꾸고, 더 좋은 기회를 찾아 나선다. 그것은 욕심이기도 하지만, 또 희망이기도 하다. 부모가 더 나은 학군을 찾는 이유도 아이의 미래가 조금이라도 밝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 마음을 단순한 욕심이라고만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흔히 종종 잊는 것이 있다.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집의 방향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라는 사실이다. 빛이 잘 드는 집이 마음까지 밝게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전망이 좋은 거실이 인생의 전망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좋은 집이 삶을 조금 편안하게 만들어 줄 수는 있어도, 삶의 의미까지 대신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어쩌면 모두가 찾고 있는 기운 좋은 집은 실제 공간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인지도 모른다. 서로를 믿어 주는 가족이 있고, 실패를 견딜 수 있는 용기가 있고,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내는 내 가족이 있는 곳. 그런 집이라면 어느 동네 어느 아파트라고 하더라도 이미 충분히 좋은 기운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아이를 의대로 보낸 집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아이를 믿고 기다려 준 시간이 특별했을지도 모른다. 그 시간을 함께 견딘 가족의 마음이 진짜 프리미엄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조금 더 고급스러운 삶을 향해 움직인다. 더 넓은 집 더 좋은 환경, 더 안정된 미래. 하지만 그 모든 것의 끝에서 바라보는 것은 단 하나다. 조금 덜 불안한 삶. 조금 더 평온한 삶. 그래서 사람들은 집값 속에 기운이라는 말을 덧 붙인다. 보이지 않는 안심을 사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인간이 붙여 놓은 의미보다 훨씬 자유롭다.
어떤 집은 기대보다 많은 행복을 주고, 어떤 집은 완벽한 조건 속에서도 공허하게 느껴진다. 집의 값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온기가 삶의 밀도를 만든다. 아파트의 가격은 숫자로 매겨지지만, 집안에 존재하는 삶의 가치는 숫자로 계산되지 않는다. 따뜻한 밥 냄새가 나는 저녁과 서로의 하루를 조용히 들어주는 가족, 창밖의 계절을 함께 바라보는 시간. 그런 순간들이 모여 삶의 한 공간을 집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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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너무 멀리서 삶의 가치를 찾는다. 그러나 삶은 생각보다 단순한 것에 가치를 둔다. 어쩌면 진짜 기운 좋은 집은 성공의 기운이 흐르는 집이라기보다 사람의 숨결이 머무는 집. 서로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머무는 집. 그런 집에서라면, 합격의 소식이 없어도 삶은 이미 충분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