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서울 벗 꽃이 절정

봄은 그렇게 예쁘게 온다

by 현월안




어제는 우리 동네 가장자리를 따라 흐르는 안양천 변을 걸었다. 봄 볕에 아지랑이가 일렁이고, 그 곁에는 벚꽃이 줄지어 피어 있다. 나무마다 한껏 부푼 꽃들이 바람을 타고 흔들릴 때마다, 그 풍경은 신비의 꿈처럼 느껴진다. 마치 누군가가 세심하게 빚어 놓은 꽃의 세상에 잠시 초대된 듯, 발걸음은 저절로 느려지고 마음은 새하얗게 맑아진다.



봄은 그렇게 예쁘게 온다. 아무리 세상이 무겁고, 삶이 어딘가 버거운 방향으로 흘러가더라도, 계절이 주는 아름다움이 곁에 있다. 우주는 여전히 질서를 잃지 않고 있다는 신호처럼. 그리고 봄 벚꽃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피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지는 의미를 품고 있다. 그 짧은 절정은 깊은 의미를 남긴다. 영원한 봄을 살 수는 없지만, 어떤 순간에는 봄처럼 살아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안양천 길을 따라 걷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로 걷고 있고 저마다의 생각을 품고 있지만, 그 시간만큼은 모두가 비슷한 봄 온기를 지니고 있는 듯하다.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나누는 그 순간들. 그것은 봄의 온기가 주는 작은 연결이다.



안양천 주변에는 왜가리가 물가에서 평화롭게 노닐고 있고, 무리를 지은 모리 떼는 물 위를 부드럽게 가르며 흘러간다. 자연이 주는 고요한 리듬을 보며 알게 된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깊은 생의 방식이라는 것을.



남편과 함께 안양천 둘레를 걷다 보니 만보를 걸었다. 숫자의 의미 보다 그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담겨 있다. 걸음을 옮길수록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한 겹씩 벗겨졌다. 일상에서 짊어지고 있는 일들은 어쩌면 아주 얇은 껍질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자연 속에 들어가면, 그 껍질은 스르르 떨어져 나간다.



요즘 세상이 어렵다고 말을 한다. 경제는 불안하고 미래는 불투명하고 마음은 쉽게 지친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 사이에서도 봄은 여전히 온다. 아무 조건도 없이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은 채, 그저 꽃을 피운다. 그것은 모든 것은 사라지지 않고, 또다시 피어난다는 순환의 의미다.



벚꽃을 바라보며 문득, 왜 매년 같은 꽃을 보면서도 새로움을 느끼는 걸까. 아마도 그 답은 꽃이 아니라, 마음 안에 있는 것일지 모른다. 계절은 반복되지만 그 계절을 맞이하는 마음은 매번 다르다. 그러니 봄은 언제나 새롭다. 그것은 외부의 변화이기도 하지만 내면의 흐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봄바람이 불어오고 꽃잎 몇 장이 허공으로 흩어진다. 봄 꽃을 보고 또 세상을 향해 다시 한 발을 내딛는다. 완벽한 조건이 갖춰져서가 아니라, 그저 살아 있기 때문에. 또 봄이 오듯이 삶도 그렇게 이어진다. 때로는 무겁고 때로는 흔들리지만, 삶은 앞으로 나간다. 벚꽃이 피는 순간을 기다리고 겨울을 견디듯, 또 보이지 않는 시간을 지나며 나의 봄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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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길 위에서 햇살과 바람, 꽃과 물,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온기.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질 때, 살아 있다는 감각을 되찾는다. 벚꽃은 곧 질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고고한 자태로 피어있는 봄 꽃을 더 오래 감각해야 한다. 언젠가 흩어질 것을 알면서도, 온 힘을 다해 피워낸 절정을. 그것이야말로 봄이 인간에게 건네는 깊은 철학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