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차 한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오늘도 무사하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이던가.
저녁이 되자
펑펑 내리던 눈이 그쳤다.
찬기운이 잔뜩 내려앉았다
커튼 사이로
바람 한 자락이 들어와
펼쳐진 책이 펄럭이고,
몇 개의 문장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내린다.
주위에 떨어진 활자들을
서둘러 주울 때
어느새 다가와
말을 거는 수많은 어둠들.
가족들이
집으로 향하는지
연신 문자가
띵동 거린다.
가족들 오늘은
어떠했을까
힘이 들진 않았을까
좀 더 나은 오늘이었을까.
조금씩 다른 모습
조금씩 다른 표정으로
오늘이 될 테지만
벗겨도 벗겨도
결국에는
속내를 보여주지 않는
오늘들.
삶이란
그런 것일까.
대단한 것을 훔쳐보듯
내게로 온 맑은 하루가
서서히
오래된 무거움이
한 겹 한 겹 벗겨지는 풍경을
홀연히 지켜보는
일에 대하여.
단지
나는 조금
쓸쓸해지는 정도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