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흐린 겨울 초저녁
가끔 익숙한 거리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나다
잔뜩 찌푸린 회색빛이다
눈이 곧 내릴 것만 같다
서둘러 재촉하는 사람들 발소리
겨울의 거리가 어두워지는 것은
깜박하는 사이에 모두 검다
자욱하게 눈 내릴 준비를 한다
폭설이 내릴 것만 같다
바삐 발걸음을
내딛는 사이로
삶이
따라 제자리로 돌아간다
골목 모퉁이 사이로
나를 닮은 한 사람이
섬광처럼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수없이 지나던 익숙한 길인데
낯설게 느껴진다
그 길을 돌아 나오는 나와
마주칠 것 같아 걸음을 멈춘다
가로등은 잔잔히 나를
비추고 있다
차가워진 손을
쉽게 주머니에 넣지도 못하고
신발에 쌓여가는 눈을 내려다본다
뭔가 단단한 흑백의 여백 앞에
걸음을 멈추자
멎을 것 같은 숨이 다시 트인다
삶은 보일 듯 말 듯
모르는 것투성이 같아도
잠시 쉼으로 여유가 보인다
가로수 나무 제가지 끝의 침묵에
이르는 길을 생각해 내느라
모두가 어둠에 묻힌 거리다
간간이 비추는 네온사인 사이로
사정없이 흩날리는 눈발들
삶은 원래 모르는 것투성이다
겹겹이 쌓인 시간 앞에서
소복이 내리는 눈을
모르는 채 맞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