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한가한 날
점심상을 곁에 밀어 두고는
달콤한 단잠에 빠졌다
깜빡 졸고 일어나
설거지를 시작하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뭐 하시나요?"
"잠깐 볼 수 있을까요?"
우리 집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왔다며
그녀 특유의 밝은 목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언제부터인지 만남은
미리 약속을 하고 계획을 하지 않으면
누구든 쉽게 만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주섬주섬 옷매무새를 만지고 나갔다
언제나 만나면 반가운 얼굴~
우리에게는
어제도 만나고
오늘도 별일 없으면
또 만나던 때가 있었다
같이 밥을 먹으며 같은 일상을
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소중한 사람들과 늘
영원히 함께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우리에게는 각자의 다른 일상이
생겨났고, 가족이 생겼고,
서로의 바쁨이 생겼다
이젠
매일 만나지 않아도
애달프지 않은 시간들로
꽉! 채워두었다
시간 참 빠르게 흐른다
앞으로 일 년에 몇 번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다행히도 서로의 웃음 속에
안심과 믿음이 들어있다
언제든 만나면 어제 만났던
사람처럼 반가운 사람,
진하게 공유했던 우리들의
시간 속에 푹 빠져들었다
나의 지난 시간을 아는
그녀의 웃음이 달다
소원해지는 시간이 길어지고
세월이 훌쩍 흘러서 만나더라도
서로가 안심이 되는 눈빛이면 좋겠다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책 한 권이 나왔다며 슬그머니 내민다
여전히 참, 그녀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