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와 함께하는 오래된 습관
카메라에 담아두면서 느끼는 깊은 감성
나의 핸드폰 갤러리에는 각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사진 수천 장이 들어있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고 받는 용도보다는 사진을 찍는 카메라로 사용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글을 쓴다는 이유로 조금이라도 눈과 귀를 사로잡는 글감으로 다가오면 그 순간을 포착해서 핸드폰으로 찍어서 갤러리에 저장을 해둔다.
유화를 오랜 시간 그렸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그림에 쓰일 자료를 찾게 된다. 그림이 될만한 좋은 자료를 만나게 되면 그 순간을 포착해 둔다.
마치 직업병이 있는 것처럼 자료를 모은다.
그림자료는 대부분 자연풍경에서 얻게 된다.
푸르른 들판 풍경을 보고 있으면
저 멀리 아련하게 보이는 산과 구름과 고즈넉하게
펼쳐진 들판과 소실점이 저 멀리 보이면
풍경 그림소재로 그만이다.
그림을 그려도 되는 자료인가 아닌가를 바로
몇 초 안에 판단이 된다. 빠르게 핸드폰 카메라에 담아두고는 세상 행복한 것처럼 흐뭇해한다.
핸드폰이 나오기 전부터 일반 카메라를 늘 가방에
가지고 다녔다. 그 오랜 세월 속에는 여러 개의 카메라가 나의 소중한 순간과 함께 했다.
멋진 풍경을 보면 먼저 가슴에 담아두고, 이미 글과
그림으로 그릴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려 넣는다.
카메라에 찍으려는 그 첫 순간을 나는 기억을 한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자연의 섭리에 의해서
시간이 변하는 찰나의 순간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되고 알게 된다.
오늘의 그 빛이 내일의 그 빛과 같지 않다는 것과,
하루도 자연은 같은 모습이 아니라는 것은, 자연이 얼마나 신비한 것인지 그 순간은 말로 형용이 되지 않는다.
마치 붉은 노을이 질 때, 그 아름다움을 보고 카메라를
가지고 그걸 찍으려는 행위가 먼저가 아닌,
그 노을빛을 눈으로 마음으로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그 순간의 묘미를 아는 사람만 느낄 수 있다.
사진을 찍으면서 오랜 시간 얻은 것이 있다.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과
남들 눈에는, 안 보이는 좀 더 디테일한 눈을
얻었다는 것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 알아진 것들이다.
직지사가 있는 김천은 남편의 고향이고 그곳에 시댁이 있다. 시댁에 가게 되면 자주 갔던 곳이다.
직지사는 입구부터 산세가 아름답고 천년고찰이라서
깊은 운치가 있고, 뭔가 묵직하게 중심을 잡고 있는 듯하고, 생각을 던져주는 맑간 신선함이 있는 곳이다. 이미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쉼을 주고 고즈넉한 곳이다. 구석구석 빠짐없이 기억에 저장된 산세가 남다른 곳이다. 사진으로 남겨두고 카메라를 지닌 덕분에 직지사에 대한 기억이 두터워졌음을, 카메라를 가지고 조각조각 다루었던 것이, 나의 기억의 정서를 섬세하고 고급스럽게 꾸며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래전에도 비싼 카메라는 그리 관심이 없었다. 중저가 카메라를 가지고 찍을 수 있고 가슴에 담아둘 수
있어서 좋았다. 사진을 찍고 자료를 가지게 되면 더 많은 사진 자료에 대한 욕심은 생긴다.
그 욕심을 풀어내는 것은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한 편의 글로 만드는 또 다른 나의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좀 더 다른 이면을 들춰내어 그림을 그려내고, 글로 풀어내어 형상화한다.
지금은 일반 카메라가 아닌 핸드폰 카메라가 나의 욕구를 채워 줄 만큼 성능이 좋아졌다.
이제는 무겁게 생활반경 안에서는 더 이상 일반 카메라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다.
아마도 나이를 더해가도 평생 뭔가를 찍을 것이다. 카메라에 담는 순간은 나의 순간이 되고,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라서 그 순간을 사랑한다.
대단한 사진 기술이 아니어도 나의 시선이
끊임없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
순간을 포착하고 형상을 만들어 가는 기쁨을 아는 것은,
오랜 시간 길들여 놓은 나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
그것으로 만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