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인연
'별난 피카소' 교수님 곁에서 행복했던 시간들
예전에 재미있게 문예창작 수업을 들을 때, 여자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생각의 발상이 너무 강렬해서 충격으로 첫인사를 했던
교수님이었어요. 말의 색채가 화려하면서도
부드럽기도 하고, 어두운 그림자를 보면 지나치지
않고, 그것을 글로 형상화하는 언어의 발상이 대단하셨던 분입니다.
그 알 수 없는 교수님의 생각에 이끌리어, 상큼한
언어의 매력에 빠져서 헤어나질 못하고, 늘 그
시간이 부족하게 느끼던 때가 있었습니다.
글쓰기의 재료인 다독과 특이하게 생각하는
독특한 발상이 달랐던 것입니다.
그분의 생각 속을 열어보면 피카소가 그려놓은
그림처럼 화려하고, 때론 알 수없고, 생각을 많이
하면서 감상해야 하는 그림 같을 거야 라는 생각이
들어서, 우리는 그 교수님을 '별난 피카소'라고 불렀습니다. 옷차림부터 범상치 않고 까만 안경
너머로 비스듬히 기대어, 시선은 45도 각도로
위를 보며 얘기하시던, 그런데 순수함이 묻어있는
분이었지요.
세월이 훌쩍 지나고 글을 쓰면서, 그 교수님이 내
머릿속에 가끔 스쳐갑니다. 그때
그 강의실에서 꺼내 놓은 생각들을, 그대로
회상하는 것이 재미있고, 그때의
소중한 시간이 내게 전해져서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은 생각에서 그때를 떠 올립니다.
그리고 가슴 벅찬 뜨거움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는 것인데도 그땐,
공기와도 같은 익숙한, 시간들 속에 짧지 않은
시간인데도 늘 그 자리에, 계셨기에
막연한 생각이었습니다.
글을 쓰려면 다독과 깊은 고뇌가 있어야 하는데
딴 세상 이야기 같았어요 생각의 발상이 다르고
롤러코스터 타는 것처럼, 매시간 탄산음료의
시원함에 빠져들게 하는지 신기하기만 생각하고 그때는 멀찍이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교수님이 힘주어 강조하시던 말은
시시한 일상을 잘 가꾸고, 사소한 말에 귀를
기울이고,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오래 아주 오래
곰곰이 생각하고, 아주 작은 것들로
만들어지는 존중과 태도가 고급스러워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시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그 뒤로도 항상 지지해 주고 용기를 주고, 생각의 힘을 가지라는 주문을 참 많이도 하셨습니다.
세월이 훌쩍 지나고 보면
소중한 사람과의 인연은 쉬 사라지지 않다는 것과,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뒤늦게
알아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처럼 깨닫게 되더라고요.
고마움의 표시를 제대로 해야 하는데
"세상을 살다가 보니까, 시간이 없어서..."
라고 미루기에는 너무도 무심한 생각이 들면서,
너무 부끄러워지는 요즘입니다. 교수님의 존재와,
그 열정이 결코 당연하지 않았음을 새삼 깨닫고,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을 이제야 느끼는 것이지요.
가끔 하는 안부조차도 교수에게 선점을 당하고 있습니다.
늘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로
시작되는 통화의 내용은, 매번 용기를 얻고
뭔가를 받기만 해서 송구 할 뿐이지요.
여전히 연세가 있으신데도 활발하게 창작활동 하시고
아직도 반짝이는 별이어서, 언제나
그 별빛을 보며, 맨 끝에서 따라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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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굳어있던 지난 소중한 시간을 알에서 톡톡
깨뜨려서 화사하고 예쁜 봄날, 따뜻한 마음을 전하려고 선물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사랑스럽게 두 눈을 마주 보고, 감사의 마음을 예쁘게 표현해 볼까 해요.
그분에게 좀 더
따뜻하게 전해지도록 말이에요.
그래도, 한 길로 이어지는 것은 표현 방식은
조금 서툴러도, 나의 속마음은 이미
"당신을 소중히 여긴다"는 단 하나의 메시지가
들어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인연도, 글쓰기도, 독서도, 결국은 '사이'에서 비롯되는
것을 알게 되지요. '사이'를 만들고 그 안에
차곡차곡 존중과 배려를 담은 나의 고마운 공간을
떠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