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그렸고, 손으로 뭘 만들어서 예술로 표현하는 것을 잘하던 친구였습니다. 눈이 커서왕눈이라는 별명이
있어서 온갖 '눈'에 관련된 수식어가 별명이었고.
진희만 나타나면 짓궂은 친구들은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며느리 다모여서~~"
떼창으로 놀려대곤 했습니다.
모두 떼창으로 놀려대면 그 앞에서 지휘하는 제스처를 취하던 성격이 좋은 친구.
얼굴이 예쁜 만큼 넓은 마음을 가져서
다툼 한번 없었고 늘 붙어 다니던 단짝 친구였습니다. 감수성이 많은 시기에 문학과 예술이 풍성하게 자리 잡을 수 있게 사유하며 서로에게 위안이던 친구였어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부쩍 말이 없어진 진희는
이러저러한 이유를 만들어 거리를 두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외곽에 있던 진희네 집을 찾아가면 진희 어머니는
"우리 진희 집에 없다"라는 말을 하시고
"다음에 와라"라는 말만 반복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진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우리가 같은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로
약속을 했던 이야기와 진희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를 궁금해하며 안부를 묻는 내용으로 여러 통의 편지를 썼지만 답장은 없었습니다. 그간 우리는 집전화보다 수시로 편지를 주고받았고, 편지를 받으면 무조건 답을 해야 하는 원칙을 정해두어서, 편지 답장을 하지 않는 것도 이상하고, 진희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내가 진학하는 여자고등학교 전체 합격자 발표 명단을확인해 보았더니 진희 이름은 없었습니다. 근처에 있는 상업고등학교에 확인해 보았지만
진희 이름은 없었습니다.
다른 지역으로 학교를 선택하지는 않았을 테고,
공부를 제법 잘하던 친구여서
고등학교를 떨어질 실력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진희의 고등학교 진학 포기는 충격이었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조심스레 편지를 쓰고 안부를 물었지만 더 이상 답은
없었습니다.진희에게 써 놓고는 부치지 못한 편지는
나의 일기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고등학교 진학을 하고 새로운 친구가 생기고 공부의
양이 많아지면서 한 몸처럼 붙어 다니던 진희와의
시간들도 서서히 옅어져 갔습니다.
같은 고등학교를 가고 같은 대학을 가고 나중에
결혼을 해서도 이웃에 살자며 둘은 떨어지지 말자며
함께 꿈을 꾸었던 애송이의 시간들이 희미하게 사라져 가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예쁜 봄날 라일락 꽃향기가 흩날리면, 진희와 시를 적어서 주고받던 작은 손 편지가
기억나고, 문득문득 공유했던 현상들이 남아 있을 뿐 더 이상 진희는 내 곁에 없었습니다.
진희의 소식은 돈 벌로 갔다는 소식뿐이었습니다. 다른
친구들과 진희네 동네를 수소문을 해 보아도 진희의 소식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진희가 우리 집에 찾아왔습니다. 그토록 궁금해하던 진희가 내 앞에 나타났습니다. 우린 반가움에
왈칵 눈물을 쏟으며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습니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이 바보야~~ "
우리 둘은 그때 우리들의 파릇한 시간들을 되돌려
맘껏 행복해하고 세상이 떠나가도록 웃었습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았더니
진희 몸이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언뜻 보면 살이 부쩍 찐 것처럼 보였지만
진희는 울퉁불퉁 몸이 많이 부어있었습니다.
몸에는 붉은 반점이 온몸을 뒤덮었고, 그 예쁜 얼굴이 부석부석 어딘가 아픈 환자처럼 느껴졌습니다.
많이 피곤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진희는 우리 집에서
줄곧 누워서 내 말에 응답을 했습니다.
염색 공장에서 일을 하는데 독한 약물에 중독된 것
같다는말을 아무렇지 않은 듯했습니다.
회사에서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고 단지 집에서 쉬면 괜찮아진다는말을 믿고 있는것이었습니다.
며칠 집에 쉰다고 병이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습니다.
진희는 그날 우리 집에서 하루를 지내며
"고등학교 진학을 왜 못하게 되었는지"그간의 궁금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진희 아버지가 일을 하시다가 다리를 다쳐서 일을
못하게 되시고 밑으로 동생이 셋이나 있어서, 맏딸인
진희가 1년간 공장에서 돈을 벌면 그동안 아버지 다리도 나아질 테니, 1년 후에 고등학교 진학을 목표로 돈을 벌기로 가족들과 계획을 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