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에 별이 된 친구 '진희'

진희 어머니의 부고 소식

by 현월안



중학교 때 진희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감수성이 한창 자라날 시기에 함께 공부하며 꿈을

키웠던 친구, 예술 감각이 뛰어나서 그림을

잘 그렸고, 손으로 뭘 만들어서 예술로 표현하는 것을 잘하던 친구였습니다. 눈이 커서 왕눈이라는 별명이

있어서 온갖 '눈'에 관련된 수식어가 별명이었고.

진희만 나타나면 짓궂은 친구들은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며느리 다모여서~~"

떼창으로 놀려대곤 했습니다.

모두 떼창으로 놀려대면 그 앞에서 지휘하는 제스처를 취하던 성격이 좋은 친구.

얼굴이 예쁜 만큼 넓은 마음을 가져서

다툼 한번 없었고 늘 붙어 다니던 단짝 친구였습니다. 감수성이 많은 시기에 문학과 예술이 풍성하게 자리 잡을 수 있게 사유하며 서로에게 위안이던 친구였어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부쩍 말이 없어진 진희는

이러저러한 이유를 만들어 거리를 두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외곽에 있던 진희네 집을 찾아가면 진희 어머니는

"우리 진희 집에 없다"라는 말을 하시고

"다음에 와라"라는 말만 반복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진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우리가 같은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로

약속을 했던 이야기와 진희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를 궁금해하며 안부를 묻는 내용으로 여러 통의 편지를 썼지만 답장은 없었습니다. 그간 우리는 집전화 보다 수시로 편지를 주고받았고, 편지를 받으면 무조건 답을 해야 하는 원칙을 정해두어서, 편지 답장을 하지 않는 것도 이상하고, 진희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내가 진학하는 여자고등학교 전체 합격자 발표 명단을 확인해 보았더니 진희 이름은 없었습니다. 근처에 있는 상업고등학교에 확인해 보았지만

진희 이름은 없었습니다.

다른 지역으로 학교를 선택하지는 않았을 테고,

공부를 제법 잘하던 친구여서

고등학교를 떨어질 실력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진희의 고등학교 진학 포기는 충격이었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조심스레 편지를 쓰고 안부를 물었지만 더 이상 답은

없었습니다. 진희에게 써 놓고는 부치지 못한 편지는

나의 일기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고등학교 진학을 하고 새로운 친구가 생기고 공부의

양이 많아지면서 한 몸처럼 붙어 다니던 진희와의

시간들도 서서히 옅어져 갔습니다.

같은 고등학교를 가고 같은 대학을 가고 나중에

결혼을 해서도 이웃에 살자며 둘은 떨어지지 말자며

함께 꿈을 꾸었던 애송이의 시간들이 희미하게 사라져 가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예쁜 봄날 라일락 꽃향기가 흩날리면, 진희와 시를 적어서 주고받던 작은 손 편지가

기억나고, 문득문득 공유했던 현상들이 남아 있을 뿐 더 이상 진희는 내 곁에 없었습니다.

진희의 소식은 돈 벌로 갔다는 소식뿐이었습니다. 다른

친구들과 진희네 동네를 수소문을 해 보아도 진희의 소식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진희가 우리 집에 찾아왔습니다. 그토록 궁금해하던 진희가 내 앞에 나타났습니다. 우린 반가움에

왈칵 눈물을 쏟으며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습니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이 바보야~~ "

우리 둘은 그때 우리들의 파릇한 시간들을 되돌려

맘껏 행복해하고 세상이 떠나가도록 웃었습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았더니

진희 몸이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언뜻 보면 살이 부쩍 찐 것처럼 보였지만

진희는 울퉁불퉁 몸이 많이 부어있었습니다.

몸에는 붉은 반점이 온몸을 뒤덮었고, 그 예쁜 얼굴이 부석부석 어딘가 아픈 환자처럼 느껴졌습니다.

많이 피곤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진희는 우리 집에서

줄곧 누워서 내 말에 응답을 했습니다.

염색 공장에서 일을 하는데 독한 약물에 중독된 것

같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은 듯했습니다.

회사에서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고 단지 집에서 쉬면 괜찮아진다는 말을 믿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집에 쉰다고 병이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습니다.



진희는 그날 우리 집에서 하루를 지내며

"고등학교 진학을 왜 못하게 되었는지"그간의 궁금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진희 아버지가 일을 하시다가 다리를 다쳐서 일을

못하게 되시고 밑으로 동생이 셋이나 있어서, 맏딸인

진희가 1년간 공장에서 돈을 벌면 그동안 아버지 다리도 나아질 테니, 1년 후에 고등학교 진학을 목표로 돈을 벌기로 가족들과 계획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면서, 진희의 긴 한숨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진희의 다부진 총명함도 더 이상 꿈도 흐릿해진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넌 참 예쁘고 성격 좋고 똑똑하고 특별한 사람이야!"

건강을 회복해서, 꼭! 야간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한다며 진희와 손가락을 걸며 다짐을 했습니다.

진희와 하루의 진한 만남을 하고 우린 서로에게

"편지를 하면 꼭 답을 하기"로 약속을 하고, 눈물을 훔치며 헤어졌습니다.

진희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었지만 진희 앞에

놓인 것들이 안타까워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라는 고민으로

생각은 점점 많아졌습니다.

진희가 적어 준 회사 주소로, 또 진희네 집으로 편지를 썼지만 더 이상 진희의 답은 없었습니다.



그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예쁘게 물들 무렵쯤

학교에서 기말고사 시험 보는 기간에

다른 친구가 다급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습니다.

"너 그 소식 들었어?"

"무슨 소식?"

"진희가 죽었대... 3일 전에..."

"아니 이럴 수가"

그 자리에 그만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진희가..."

학교에서 중학교 때 진희랑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진희네 집을 찾아갔습니다. 진희네 집에는 인기척이 없었고 마무도 없는 빈집이었습니다.

마침 옆집에 사는 사람이 교복을 입은 우리를 보고

진희 소식을 자세히 들려주었습니다.

진희의 병명은 백혈병이었고 그러니까 나를 만나던 여름부터 병원을 드나들며 투병하다가 며칠 전에 하늘에 별이 되었다는 말이었습니다.

진희어머니는 충격을 받아서 병원에 입원을 하셨고

가족들 모두 병원에 가셨다는 말에서 남은 자들의

슬픔이 가슴 깊숙이 전해졌습니다.

사람과의 인연이

"이렇게 툭! 쉽게 끊어질 수 있는 것일까..."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일까..."

아주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이별은 한동안 트라우마로

남아서 가슴앓이를 해야 했습니다.

삶과 죽음을 가지고 평생 화두를 던져주고 간 친구 진희.

며칠 전 진희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장례식장을 찾았습니다. 진희 어머니에게도 그리고

진희에게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목놓아 배웅을 했습니다.

삶과 죽음은 함께 있기에 시간의 거리가 있을 뿐, 언제든 그 길을 가는 것이고

모두가 만나지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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