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하게 지내는 지인들과 북한산에 올랐다.
입구부터 가을단풍이 화려하다.
이러저러한 고민들을 툭 내려놓고 아무 생각 없이 숲길을 따라 걸었다. 온몸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희열과 고단함이 그리 싫지 않은 기분이다.
숨이 턱턱 막히고 힘겨움이 몰려와도 앞사람을 따라 걸었다.
잠시 쉬어가는 곳에서 만난 이름 모를 새들과 그곳에 있는 작은 존재들 모두가 아름답다.
곱게 익어가는 단풍의 빛깔과 자연의 변화들 이유를 알 수없지만 아득하게 동화 속 세상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포근하다. 소음도 먼지도 없는 호젓하고 그윽한 풍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무아지경 속에서 걷다 보니 어느덧 북한산 정상이다.
아래를 내다보며 생각에 잠긴다.
삶의 정글에서 생의 목표는 생존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몸부림쳤다. 때로는 좌절이 일상이었고 앞이 보이지 않는 불안이 자꾸 고개를 들었다. 절망으로 주저앉을 것 같은 날들이 반복되었고
삶이 이대로 끝나 것만 같은 날들이 연속이었다.
깊은 절망은 모든 것을 체념하게 했고 절망이 켜켜이 쌓인 것들이 무기력하게 지배하던 때가 있었다.
세상에서 다치고 거듭 절망하던 일들이 대자연 앞에서 느끼는 작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북한산 정상에서 충분히 가을을 만끽하고 있을 무렵쯤, 하늘은 맑은데 지나가는 소나기기가 세차게 뿌렸다.
맑은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이리저리 나무 밑으로 몸을 피하느라고
분주한 사람들의 모습들...
위기 때 살려고 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움직임이 보였다.
세차게 뿌린 한줄기 소나기에 온몸이 젖어 마음이 축축해졌다.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라는 것을 알지만 북한산 정상에서 꼼짝없이 흠뻑 비를 맞았다.
대자연 앞에서 좌절은 모두 덧없는 것이라는 듯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알려주었다.
대자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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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분주한 생활 속에서 북한산 산행은 잠시 휴식을 주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볼 수 있고 또 작은 존재임을 알게 해 준다.
대자연은 그 자체로 완성이지만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을 자연, 자연이 들려주는 좌절 속 희망이
거기에 있었다.
때로는 인간이 삶은 좌절을 이겨내려고 발버둥 치지만 미숙한 희망으로 허우적댄다.
세상을 산다는 것은 늘 즐겁고 또 버거운 일이다.
알고 있는 것이지만 좌절과 소나기는
곧 그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