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농축된 지난 시간

한때 깊숙이 들여다보았던 생각의 시간이 멈췄다

by 현월안




독서토론 모임에서 알게 된 그녀와 인연은 특별하다.

한 달에 한 번 정해진 책을 가지고 독서모임을 하던 여러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

깡마른 체구에 늘 생각이 많았던 그녀는 우수에 잠긴 표정보다, 조금 더 가라앉은 우울에 가까운 기분을 하고 있었다. 생각이 많아도 너무 많은 사람이었고

이 시대의 철학가라면 아마도 그녀가 가진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그녀는 누구에게나 생각의 꼬리를 물고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불꽃이 튀듯이

그녀에게 질세라 다들 양보하지 않고 비판을 하고 생각의 한계까지 서로를 몰아붙이곤 했다.

토론을 제대로 할 줄 아는 그녀 특유의 화법에 매번 제대로 방어를 하지 않으면 다들 일방적으로 당했다.

유난히 그녀는 철학과 인문학 허점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까칠한 사상가였다.

서로 질문을 가지고 지지 않으려고 기싸움을 참 많이도 했다. 매번 진이 다 빠질 정도로 팽팽하게 의견대립을 했다.



독서토론에서 그녀는 모든 사람들과 서로가 안 맞으면서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았고, 서로 부정하면서 정이 들었다.

그녀 특유의 달변으로 생각의 끝자락을 잡고 카타르시스를 즐겨가며 타인의 의견에 사정없이 공격을 했던 걸 보면,

책 속의 깊숙한 이면까지 꺼내어 할퀴듯 자극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토론을 즐기는 여인이었다.

그리고는

그 토론 시간을 빠져나오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모두가 지쳐있었고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다들 그 시간을 즐겼다.

그런데 토론 장소만 벗어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별 감정이 없었다. 오랜 시간 독서토론에서 생각을 나누었으니 모두가 그 여인의 화법과 같아지고 있었다. 뚜렷한 형체는 없지만 그녀의 존재는 구별되는 넘사벽이었다.



그녀와의 토론 시간을 10여 년쯤 보냈을 때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여인이 없었다면 토론이 "재미있었을까?"

"아마도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여인을 견제하며 약간의 부담을 느끼며 토론자료를 준비해야 했던 것을 보면 여러 사람 중에서 그녀는

보통의 생각을 뛰어넘는 사람이었다.

사고의 확장과 글쓰기의 좋은 토대가 되었던 것은 아마도 그 여인과의 고급지게 농축된 시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그녀와 함께한 12년의 시간이 멈췄다.

대장암 3기...

그녀가 아프다.

깡마른 체구에도 암이 생겨날 틈도 없었을 텐데

"어찌 이런 일이..."

암투병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녀가 마주하는 시간이 힘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녀와 나는 독서토론의 원년 멤버였고, 이제는 대부분 새로운 사람들로 구성되었고 토론의 열기도 예전과는 다르다. 그녀의 빈자리가 확실하게 보인다.

그녀는 토론에 진심이었고 방대한 독서량에서 비롯된 특별하게 뇌가 고급스러운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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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더해갈수록 새롭게 사람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점점 다양한 사람과 얼굴을 맞대는 상황이 줄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인간관계에서 기나긴 관계의 역사가 쌓여 있기 때문이다. 어떤 관계가 나를 힘들게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걸 안다는 것은 군중 속에 나를 가두는 높은 담장이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꼭 있어야 한다.

사람과 사람은 단순한 관계에서부터 복잡하게 얽혀 있듯이 너무도 다양하다. 관계의 여러 유형 중에서는 생각의 배움과 서로를 신뢰하는 수용은 배부른 관계 설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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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토론에서 만난 그녀와의 지난 시간은 여러 유형의 만남 중에서 가장 밑바닥에 쌓아 놓은 근저의 배부름이었다.

내가 쉴 수 있었던 시간과 생각의 생각을 덧씌우는 시간이었다.

나의 생각이 담쟁이덩굴처럼 뻗어갈 수 있게 여유의 공간을 만들어준 그녀와의 시간이 고맙다.

토론 쌈닭이었던 그녀의 온기는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으로 남아있다.

그녀의 암투병이 가볍게 완치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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