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봄은 무겁다
화창한 봄날 아는 지인들과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씩을 들고 동네에 있는 파리공원을 걸었다.
봄꽃과 푸르름이 예쁘게 물들어가는 것에 환호를 하며
다들 봄볕의 여유를 즐기고 있을 무렵, 배우 장미희 씨를 닮은 여인에게 전화가 왔다.
"잘 지내?"
안부를 묻기도 전에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감정을 쉽게 놓지 않는 사람인데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서 다독이고 위로를 하며 들어주었다.
그녀의 아들이 17살이던 해에 사고로 잃었다.
아들의 생일을 떠올리며 보고 싶다고 흐느끼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하소연을 하고 싶어서 나한테 전화를 했다며...
"내 말 좀 들어줘요~"
그녀는 목에 걸려서 삼키지 못했던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숨이 턱턱 막힐 때까지, 머리가 어지러울 때까지, 전화기를 들고 있는 팔이 저릴 때까지...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나는 앉지도 어디에 기대지도 못한 채 사람들이 오고 가는 그곳에 서서 오래도록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녀의 짓누르던 마음이 가벼워질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그 뒤로
한참 동안 묵직한 이야기는 반복되다가
전화를 끊었다.
사람들과 인연을 가지고 살지만 가장 밑바탕에 묻어둔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꺼내 놓기가 쉽지 않다.
"오늘 날씨가 좋네요"
"옷이 잘 어울려요~"
"식사했어요?"
가볍고 무해하고 건조한 말들만 오고 간다.
아무리 친하게 지내는 인연이어도 만나면 반갑게 겉 인사만 나눌 뿐이다.
사실, 누군가의 깊은 고민을 가지고 눈물을 흘려가며 공감하고 충분히 마음을 교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너무나 깊은 아픔을 지니면 타인과 진심을 나누기가 쉽지 않고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진한 아픔을 가진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삶은 그래서 더 묵직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하소연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잠시 가벼워질 뿐 다시 원래의 무게로 돌아갈 것이다. 결국 스스로가 참아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기에 그녀의 맘이 아픈 것이다.
자기 관리 잘하고 늘 밝은 표정을 가진 그 여인도 때로는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날이 있을 것이다.
그날이 바로 그날이었을 것이다.
세상에 혼자 남은 듯한 괴로움과 묵직한 기분이 찾아오는 날이 있을 것이다.
때로는 말하고 싶은 상대방의 팔을 있는 힘껏 틀어쥐고는
"내가 오늘 힘들어요~"
"우리 아들이 보고 싶어요"
하소연하고 싶어지는 날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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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쌓아둔 말들을 내게 쏟아냈으니 그녀의 맘이 좀 편안했으면 좋겠다. 어찌 짧은 몇 마디로 그녀의 맘이 위로가 될까?
그 무직한 이야기는 아무리 풀어내도 다 못 할 이야기다.
그녀의 아픔 속에 나의 유한한 시간 한 조각이 위로가 된다면 기꺼이 그 시간을 내어주고 싶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여 준 순간이
모이면 아무리 휘청거리는 순간이 찾아와도 그녀는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밝은 웃음 속에 때로는 슬픔이 묻어있듯이 삶은 누구나 비슷한 무게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
멀리 있는 삶은 잘 모르겠지만
그녀가 마음을 놓고 나와 이야기 나누던 그 순간만큼은 그래도 그리 무겁지 않은 순간이었을까?
삶은 누구나에게 참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