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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했던 엄마의 얼굴

사랑으로 나눔을 하시던 엄마의 얼굴

by 현월안


요 며칠 옆집에서 행복한 웃음소리가 부러울 만큼 세상 떠들썩하더니 친정식구들이 다녀가셨다며 탐스럽게 생긴 커다란 늙은 호박을 옆집 여인이 주더라고요

친정엄마의 손길이 잔뜩 묻어있는 푹 익은 김치와 여러 가지 말린 나물과 함께 철이 살짝 지난 늙은 호박인데도 너무 탐스럽게 생기고 분이 보얗게 나서 "너무 예쁘다" 나도 모르게 말이 툭 튀어나오더라고요 그 순간 우리 엄마 얼굴이 생각나서 반가움에 얼른 받았어요 반박자만 참으면 우아한 몸짓인 것을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손이 먼저 움직였던 것은 아마도

"저 멀리 밀려오는 그리운 친정 엄마 향기, 그 포근하고 따뜻한 품"이 순간 스치는 것은

어쩔 수없이 끌어당기는 원초적인 이끌림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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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엄마는 호박으로 나눔을 하셨어요 동네 들어가는 길목, 제일 좋은 자리에 위치한 우리 집은 널찍한 마당에 한가운데 솥을 걸어놓고 호박죽 끓이는 날이면 이웃과 잔치를 벌이는 날이었어요

"수야엄마 어서 와!

준이엄마 어서 와요 호박죽 한 그릇 하셔..."

여러 사람과 나누어 먹으며, 동네 여인들의 웃음소리는 순수하면서 때 묻지 않은 순박한 표정에서 나오는 세상 행복한 모습이었습니다 자본주의 경쟁을 하기 전이었으니 그곳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거의 삶이 모두 비슷비슷한 처지였기에 누구를 꼬집어 말하거나 시기, 질투, 분쟁이 없었던 자연스럽게 연장자의 말에 순응하는 말의 공손함과 질서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 풍경은 시대만 바뀌었을 뿐, 지금으로 말하면 아마도 예쁜 커피숍에서 행복한 사람들을 만나서 커피 한잔 하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과 같은, 그렇게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내가 어렸을 때지만 마치 "순수하고 맑은 옥빛"같았던 사람들의 순수한 표정은 기억 저편에 맑게 간직하는 한 부분이기도 하지요

사람을 좋아하시던 엄마는 나누면서 행복의 느낌을 아는 그야말로 인간적인 정이 많아도 너무 넘쳐서 사람에게 진심을 나누고 싶었던 것이지요 큰 살림을 맡아서 하시던 사대부 종부의 마음 씀씀이는 나눔을 하고도 넉넉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었던 것이지요 뭔가를 나누고 난 후의 그때 엄마의 얼굴은 봄날 햇살만큼이나 따사롭고 엄마의 표정은 세상 행복한 얼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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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호박을 대청마루에 쭉 나열해서 볕을 쬐이면 뽀얀 분이 나서 단맛이 깊어진다고, 예쁘게 이름 붙여서 바람 잘 통하고, 옆광으로 비치는 가을볕에 내놓았지요

그때의 엄마 얼굴은 가장 예쁘게 젊을 때였고 힘 있게 추진력 있는 맏종부의 역할들이었습니다 추위가 시작되면 작은방 한편에 예쁘게 크기 맞추고, 탑처럼 줄 세워 쌓아 올리면 마치, 명상이라도 하는 것처럼 모셔두며 흐뭇하게 행복한 얼굴이셨지요

그리고, 늙은 호박은 공주처럼 모셔야 한다며 추운데 내놓으면 금세 맘이 변해서 썩어버리고, 덩치만 크지 속은

아주 여려서 보드랍게 다뤄야 한다며, 마른 걸레질을 하고 또 하고 중얼중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자식처럼 밀담을 나누며 행복한 얼굴을 하고 계셨지요


''그때에 엄마는 젊었는데,

그때에 엄마는 예뻤는데...''


어느새 단물이 다 빠져 대지를 향해 축 늘어져 헐렁헐렁, 바람의 시간만 들락거립니다 금방 흘러내릴 듯한

가녀린 몸은 바닥을 향해 깊은 포물선을 그리고 있지요 무표정하고 새초롬하게 표정을 지으며 행동반경이 단순하고, 어린아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맑고 순수한 모습 그대로 말입니다


''고운 얼굴, 행복한 얼굴,

사람들 속에서 웃음 짖던 표정들...''


다 어디에 두었을까요, 햇살에 걸어 두었을까요.

그 햇살을 걷어서 꽃길에 비추고 엄마가 좋아하시던

장미 꽃밭에 초대해서 그 수많은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다시 한번 들려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입니다 그때에 행복했던 웃음들 아직 기억에 남아 있을까요?

남아있는 엄마의 마음 공간이 평온하길 바라며 오늘은 유난히도 나눔을 좋아하시고 사람들 속에서 빛나던 엄마의 행복했던 웃음을 꺼내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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