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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행복했던 3년

광명에서 환하게 웃음 짓던 엄마의 모습

by 현월안

올여름 끝자락에 엄마를 여의고 참 많이도 힘들었다 많이도 의지하고 기댔던 정신적인 지주였기에 한쪽 날개가 확 꺾이듯이 무어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영혼이 한순간에 확 빠져나가는 허탈한 기분이었고 말로 설명하기 힘든 순간들을 경험했다 아버지를 떠나보낼 때보다도 분명 다르게 다가왔다 사랑이 많은 엄마라서 더 애틋하고, 정이 많아도 너무 많은 엄마라서 그 정을 놓아버리기가 너무 힘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록새록 생각나는 것들과 문득 떠오르는 감정들이 나의 정신을 일렁이게 했다 아마도 부모 자식의 연은 엷어질 뿐, 영원히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는 고향집을 떠나 돌아가시기 전까지 3년을 언니가 모시고 살았다 언니는 딸하나를 둬서 시집보내고 부부가 은퇴를 하고, 주택에서 예쁘게 꽃을 가꾸며 지내고 있던 때였다 큰딸로서 엄마를 모시겠다고 해서 마지막 여생을 언니네서 보내셨다


평생 한 번도 집을 떠나 본 적이 없는 엄마가

종갓집 대궐 같은 큰 집과 그 많던 살림을 두고 언니네로 떠나던 날을 잊지 못한다 엄마는 집을 나서려니까 발길이 떨어지지 않으셨는지, 집안을 한 바퀴 돌며 물건들이 제자리에 놓여있는지 살피셨다 마치 마지막 인사라도 하시는 것처럼, 측은하게 집안을 둘러보셨다


엄마가 잘게 썰어서 말려놓은 무말랭이를 한 줌을 잡고 뒤적거리며

'비가 오겠어... 비 맞으면 안 돼... '

'안으로 들여놔야 겄어...'

모두가 손에 익었던 살림을 그대로 놓아두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내디뎌야 했다

'푹 익어서 삭고 삭은 그 시든 한평생의 역사'를 모시고 우리는 서울로 출발을 했다 종갓집 종부로 힘차게 살아내시던 모습은 어디 가고, 앙상한 몸집과 녹슨 손등에는 슬픔의 핏줄이 앙상하게 남아있는 것 같아서 나는 서울로 오는 내내 마음으로 울었다


광명시에 사는 언니가 애기 다루듯이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엄마는 가끔 집에 가고 싶다고 하실 뿐 다행히 잘 견디셨다 언니네집 주변 광명시는 참 예쁜 곳이다 서울과 인접해 있으면서 산이 있고 작은 텃밭이 곳곳에 있어서 정겨운 곳이다 시골과 도시가 함께 있는 듯해서 엄마가 지내시기에는 아주 좋은 환경이었다 수려한한 자락이 언니네 주변을 휘감고 있어서 봄이면 꽃들이 만발하고, 여름엔 시원한 녹음이 있고 가을엔 단풍이 아름다운 곳이다 그곳에서 우린 엄마와 많이도 추억을 만들었다 동네 주변을 산책하며 늘 쉬어가던 자리와 연꽃이 피어있던 예쁜 연못에서 맘껏 행복하게 옛날 얘기하면서 엄마와 함께했다


우리 사 남매는 고향집을 지키며 사는 큰 남동생을 제외하고 모두 서울과 그 인접도시에 산다 엄마가 언니네로 모시면서 작은 남동생과 나는 한 달에 매번 3박 4일 머물기를 규칙처럼 정해두고, 3년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찾아뵈었다

엄마랑 모여서 맛있는 것도 해 먹고, 때로는 여행을 하고, 저녁에는 엄마가 좋아하시는 짝 맞추는 민화투를 치면서 내기를 해서 통닭을 시켜 먹기도 하고, 특별한 것을 배달시켜 먹으며 행복하게 깔깔거렸다

얼마나 행복하게 웃었던지, 엄마와 함께라서 웃을 수 있었고 꾸미지 않은 민낯으로 해맑게 그곳에서 웃을 수 있었다


얼마 전 언니가 심하게 앓아누웠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와 보낸 3년이 짧지 않은 시간이다 지극정성으로 엄마를 모셨기에 우리는 그 노고를 다 알고 있다 몸으로도 힘들었지만 엄마의 빈자리가 힘들었던 것이다 찐하게 사랑을 쏟아부으며 함께 살았던 사람이 느끼는 헛헛함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함께 살아온 시간만큼 가슴앓이를 할 것이다 언니와 형부는 아무나 할 수 없는 대단히 큰일 치른 사람들이다


동생과 언니네를 찾았다

언니네집 곳곳에 엄마의 체취가 묻어있었다 그만 엄마라고 부르면 문을 열고 나오실 것만 같았다

엄마의 훈기가 그렇게도 엄청났을 줄이야 자식들끼리는 뭔가 뻣뻣하고 데면데면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아무리 반갑게 맞이해 주어도 엄마 계실 때랑 다른 느낌이었다

그 방에서 세상이 떠나가도록 엄마랑 함께 웃었는데,

그 웃음 다 어디 갔을까 싶다

정신을 차리고 보았더니 보이는 것들이다

돈으로 살 수 없을 만큼 귀하고 소중한 것은 내손에 가질 수 없기에 일찍부터 가슴으로 품어야 한다

참았던 숨을 길게 내 쉬었다

부모가 계실 때 그 훈기는, 세상을 다 녹일 만큼 따뜻했고, 데일만큼 뜨거웠다

그것이 무조건적인 사랑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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