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피할 수 있을까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누군가의 품에서 자라고, 말을 배우고 관계 속에서 자아를 쌓아 나간다.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사춘기부터 인간이 깊이 느끼는 감정 중 하나가 외로움이다. 사람들 틈 속에서도 외롭고, 가까운 이들과 함께 있어도 공허함을 느낀다. 인간이 가진 숙명이고 풀어지지 않는 숙제다. 사람은 서로 연결되고 소속되고 싶어 하고 수많은 모임을 하면서도, 허한 감정을 느낀다. 외로움은 단순한 감정이 아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근본적으로 장착된 감정이다.
외로움은 누군가 곁에 없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일 거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그렇지 않다. 존재 자체에서 시작된 본래의 외로움이다. 흔히 누구의 생각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고, 누구에게도 나의 내면의 깊이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말에서 이어지는 감정은 전해지는 순간 또 희미해진다. 이처럼 자신의 세상 안에 갇힌 채, 누군가에게 다가가고자 애쓰면서도 또 항상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기를 좋아한다. 그 거리감, 그 틈 사이에서 또 외로움을 느낀다.
사회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 스마트폰 하나로 수백 명과 소통하고, 커뮤니티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 연결 속에서 외로움은 더 깊어진다. 지금의 관계는 깊이보다는 넓이에 치우쳐 있다. 누군가의 근황을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의 내면과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허공에 대고 얼굴 없는 대화를 하고 감정 없는 반응을 한다. 어쩔 수 없는 수많은 연결이 더 외롭게 만든다.
외로움은 우울, 불안, 심리적으로 깊숙이 이어져 있다. 외로움은 마음의 고통이고, 삶 전체를 흔드는 문제일 수 있다.
그럼, 외로움을 피할 수 있을까. 피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억누를수록 더 강하게 다가온다. 외로움은 인간이라는 존재로 살아가는 한, 피할 수 없는 존재다. 외로움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이해해야 한다. 나의 내면을 잘 다독이고 심신의 안정을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외로움은 때론 나를 돌아보는 기회를 된다. 고요한 시간 속에서 고스란히 나를 마주하고,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이다. 외로움은 또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게 만드는 감정이기도 하다. 나의 외로움을 인식할 때, 타인의 외로움에도 공감할 수 있다. 서로의 고독을 알아보고, 또 손을 내밀 수 있지 않을까.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심리학에서 말하듯이 진실된 관계이다. 마음에 맞는 사람과 서로의 존재를 진심으로 인정하고 공감할 수 있는 관계이다. 말없이 함께 있어도 편안한 사람,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 그 만남이 외로움의 무게를 덜어준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비슷한 성향을 만나고 소통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먼저 솔직해져야 하고, 상처를 감수해야 하고, 진실한 관계는 안전한 거리 바깥에서 이루어진다. 때로는 상처받고, 때로는 오해하고, 때로는 외로움을 다시 느끼면서도 관계 속에서 조금씩 자라고, 연결의 흐름을 키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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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외로움은 정의하기도 표현하기도, 또 어떤 결론도 쉽지 않다. 그러므로 인간은 외로움을 없앨 수 없다. 그러나 외로움 속에서 인간다움을 배우고, 삶의 진실을 알아가는 것이다. 외로움은 누군가를 갈망하고 있다는 것이고,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외로움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동행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외로움을 껴안는 용기와 그 속에서 더 나다운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