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적당히 부드러워서
가을은 적당한 기온이라서 좋다.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삶이 느끼는 적당한 온기, 몸을 감싸는 마음의 온도에서도 포근하게 느껴진다. 너무 벅차지도 않고, 너무 허무하지도 않은 가운데의 따스함이다. 부드러움이 중간쯤 머물러 있는 듯하고, 가을은 깊이 숨을 들여 마셔도 되는 생각의 계절이다.
아침저녁 바람의 결이 달라졌다. 여름 내내 일군 벼 이삭은 숙이고, 마침내 열매의 무게로 겸손해진다. 겸손함이 바람을 스치며 전해준다. 바람은 시간의 숨결이자 기억의 소리다. 기억 너머로 스쳐 지나가던 풍경들. 가을바람은 기억을 가져와 나의 가슴에 내려앉게 한다.
색으로 아름다운 계절 가을이다. 붉게 타오르는 단풍은 불꽃의 마지막 노래처럼 눈부시지만, 내겐 언제나 브라운의 온기가 먼저 다가온다. 브라운은 눈에 화려하게 들어오지 않지만, 오래 볼수록 따뜻하다. 마치 오래 묵힌 책의 종이 냄새 같고, 오랜 편안함이 들어 있고, 무심히 벗어놓은 코트처럼 편안하다. 화려함은 눈을 사로잡지만, 깊이는 브라운이 품는다. 그 색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사라지지 않는 멋의 바탕 같은 것이다.
결실과 사색 사이에서 가을은 조용히 균형을 잡는다. 흔히 시작이나 끝에 의미를 두지만, 진짜 본래는 중간에 있다. 너무 서두르지도 않고, 너무 멈추지도 않은 적당한 온기의 순간들. 가을은 그 중간의 아름다움과 고급스러움을 지니고 있다.
적당한 온기 가을이 아름답다. 나이를 먹을수록, 삶의 계절을 여러 번 돌아갈수록, 중간의 소중함을 더 깊이 알게 된다. 젊을 땐 늘 봄을 기다리고, 한창일 땐 여름의 뜨거움처럼 열정을 내고, 나이 들어가면서 겨울의 고요가 좋지만, 그래도 가을은 과하지 않게 은근히 자리하고 있다. 밀어내지도 않고, 그렇다고 놓아버리지도 않는 부드러운 균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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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마음의 온도를 맞추는 시간이다. 그 온도가 있기에 다시 봄을 기다릴 수 있고, 겨울의 고요도 받아들일 수 있다. 삶의 가장 깊은 위로는 화려한 시작도, 장엄한 끝도 아닌, 가을처럼 적당한 온기에서 온다.
그 적당함 속에서 조금 흔들리고, 또 조금은 위로를 받는다. 그게 가을이 주는 온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