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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아들과 치매 할머니

웃음, 도리, 사랑.

by 현월안




자주 가는 카페가 있다. 이층으로 된 넓은 공간이고, 사방으로 트여있는 넓은 통창으로 만든 카페다. 그리고 계절마다 바뀌는 유명 화가의 그림이 걸려 있다. 그곳은 가끔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 좋은, 나에게는 아주 좋은 장소다.

그리고 카페에 갈 때마다 마주치는 풍경이 있다. 나와 비슷한 시간에 찾아오는 두 사람, 치매를 앓는 할머니와 그 곁을 지키는 오십 대 쯤되어 보이는 아들이다.



할머니는 하얀 얼굴에 늘 빨간 모자를 비스듬히 눌러쓰고 앉는다. 젊었을 때 참 멋쟁이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를 꼬고 앉는 자연스러움과 몸에는 고급스러움이 묻어있다. 그리고는 콜라 한 잔을 마시고, 작은 빵을 한입 베어 물며 대화를 이어간다. 아들은 커피를 마시며 그 옆에서 천천히, 깊은 애정을 담아 이야기를 나눈다. 둘 사이의 대화에는 늘 웃음이 있다. 마치 세상의 무거운 짐은 사라진 듯, 오로지 서로의 눈과 목소리에만 집중한 채 밝은 웃음을 나눈다.



치매라는 병은 기억을 앗아가지만, 관계의 바탕은 남겨 놓는다. 기억이 사라져도 웃음은 남고, 사랑은 여전히 흐른다. 아들은 마치 어린 아기를 돌보듯 조심스럽게 할머니에게 맞추어 대화하고, 할머니는 그 온기에 따라 웃음을 터뜨린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세월 속에서 어떻게 다시 뒤바뀌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젊은 시절에는 아들이 어머니의 품에서 자라났을 터인데, 이제는 아들이 어머니를 품에 안고 보살핀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많은 울림을 준다. 서로의 빈자리를 메우고 이어지는 사랑의 순환을 잘 보여주는 모습이다.



인간은 왜 기억을 잃을까. 기억이 사라질까. 기억은 뿌리이고 삶을 엮는 실타래다. 그 실의 이음이 끊어지면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기억은 사라져도 여전히 관계 속에서 살아있다. 기억은 잊힐 수 있으나, 사랑은 여전히 서로를 붙들고 있다. 기억보다 혈육으로 나눈 사랑으로 마지막 끈은 붙잡고 있는 것이다.



사회는 점점 각박해지고, 돌봄은 시설에 위임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또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형편과 상황이 다르고, 돌봄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만나는 모자는 조용한 질문을 던진다. 마지막까지 누군가의 곁을 지키는 것,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도리, 그것이 인간다운 삶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카페에서 책장을 넘기다가도, 글을 쓰다가도 자꾸만 고개를 돌려 그들의 풍경을 바라보게 된다. 잊음과 기억 사이, 그 사이를 잇는 다리는 결국 웃음이고, 도리이고, 사랑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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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언젠가 기억의 무게를 잃는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남아 있는 것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을 수 있는 관계다. 잊어버림조차 두렵지 않게 만드는 힘,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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