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이 아기 얼굴에 상처를
요즘은 반려견을 키우는 가정이 많다. 작은 강아지부터 덩치 큰 개까지,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이제는 가족처럼 자리 잡았다. 반려견을 안고 다니거나 예쁘게 단장해 인형처럼 꾸미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 되었고, 그만큼 강아지는 사람들 곁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러나 가까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조심과 책임이 따라야 함을 종종 잊곤 한다.
며칠 전, 내 눈앞에서 일어난 한 장면은 너무나 강렬했다. 아파트 1층 엘리베이터 앞, 평범한 하루의 한순간이었다. 아기를 안은 젊은 엄마, 나, 그리고 또 다른 이웃이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한 젊은 아가씨가 긴 목줄을 쥔 강아지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강아지가 펄쩍 뛰어올라 세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아기의 얼굴을 할퀴어 버린 것이다.
아기는 순식간에 울음을 터뜨렸고, 엄마는 아기를 끌어안고 당황 속에서 아기와 함께 울음을 터뜨렸다. 견주는 연신 "죄송합니다"를 외쳤지만, 이미 아기의 얼굴에는 피가 흐르고 깊은 상처가 남아 있었다. 순식간에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누군가 119를 부르겠다고 말을 했고, 아기 엄마는 울면서 "네, 빨리 119 불러 주세요" 떨리는 목소리로 절규를 했다. 곧 도착한 구급차에 아기와 아기엄마, 그리고 견주까지 병원으로 향했다. 그 자리에 남은 사람들은 모두 충격과 분노, 안타까움 속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기의 작은 얼굴에 입은 상처는 흉터로 남을 것이다. 엄마의 마음속에는 얼마나 큰 두려움과 죄책감이 자리할까. 반려견 주인의 마음에도 깊은 후회와 무거운 책임이 남을 것이다. 견주가 좀 더 조심했어야 한다고 그 자리에 남은 사람들은 원성이 많았다.
반려견은 요즘 가족이다. 그 가족이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 속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강아지 주인은 키우는 강아지가 한없이 사랑스러운 존재다. 하지만 아무리 순하고 예쁜 강아지라고 하더라도 언제든 공격성을 가진 동물의 본능이 튀어나올 수 있다. 공공의 공간에서는 다른 이의 안전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반려견과 살아가는 이의 책임이고 도리일 것이다.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동물이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서로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가며, 그 안에서 끊임없이 도덕적 책임을 지닌다. 책임은 늘 불편할 수 있고, 때로는 무겁다. 그러나 그 책임 없이는 진정한 의미도 없다.
삶은 늘 사고와 사건으로 가득하다. 그 속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작은 주의와 배려일 것이다. 법으로 대응하기 이전에,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다. 아기 얼굴에 새겨진 상처는 시간이 지나며 옅어질 수 있겠지만, 그날의 공포와 아픔은 아기와 아기 엄마에게 고스란히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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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서로의 안전과 적당히 거리를 지켜주는 일이다. 반려견을 키우든, 아이를 키우든, 혹은 그저 평범한 이웃으로 살아가든,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 연결 속에서 조금 더 책임을 다할 때, 세상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