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세 개
장마철인 여름에는 식구들이 우산을 쓰고 나갔다가 깜빡하고 가져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몇 개씩 우산을 구입하게 된다.
마침 쇼핑몰에 갔다가 맘에 드는 것이 있어서, 검은색으로 중간 크기의 우산, 세 개를 샀다. 우산을 파는 점원이 세 개를 단단히 묶고, 들고 갈 수 있게 끈으로 손잡이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잠시 휴게실 의자에 앉아서 물을 마셨다.
급히 나오느라 그만, 우산을 두고 나왔다.
그 자리에 다시 가서 찾아보아도 우산은 없었다.
순간, "어머 어떡하지"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우산은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라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편은 조용히 흔들렸다. 아직 펼쳐보지도 않은 세 개의 우산은 이미 사라진 건 물건이었다.
그런데 쇼핑몰을 나와서
앞쪽, 내 시야 너머로 누군가가 걷고 있었다.
그 사람의 손엔 내가 산 우산이 들려 있었다.
점원이 우산 세 개를 빨간색 끈으로 묶어 주어서 단번에 알아보았다. 내가 구입한 우산이 분명했다.
그 순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하고...
“아저씨”
"잠깐만요~"
내 입에서 튀어나온 그 외침은 내 것을 되찾으려는, 반사적신 의지였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본능적으로 그를 향해 뛰었다.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그도 나를 힐끔 돌아보더니 속도를 높였다.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는 날렵하게 잘도 달렸다.
두 사람은 한순간의 도덕적 혼란 속을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가방을 들고 있었고 구두를 싣고 있어서 속도가 나질 않았다. 따라가다가 중간에 그만 멈췄다.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는 우산을 가지고 내 눈에서 사라졌다.
"그 남자는 왜 우산을 들고 갔을까?"
사실, 우산이 버려졌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길에 있던 것이니 주워도 되는 것, 아무도 주인이 없으니 내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은 상식의 경계 너머에 있다.
그 우산을 찾으려 쫓아갔던 것은 단순히 물건을 되찾으려는 것도 있지만, 나도 모르는 인간의 본능의 질주였다. 내 것, 내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순간의 허탈은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산을 가져간 사람은 아마 자신의 행위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내가 소리쳤을 때 도망치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단순한 회피가 아니라, 들켰다는 불안이 섞여있는 행동일 것이다.
일상은 아주 사소한 선택 속에서 산다.
누구의 우산인지 모를 때, 잠시 멈춰서 생각하는 그 몇 초, 그때가 바로 양심의 시작이다. 그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것이 양심을 지키는 것이다.
반대로, 자신의 행동이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 상황을 회피하는 것은, 도덕적 상식에서 도망치는 것이다. 그것은 남의 물건을 가지는 것보다, 자기 자신의 양심을 무참히 저버리는 행동이다.
누구나 인생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순간이 있다.
그것이 우산이든, 사람의 마음이든, 시간의 한 조각이든...
하지만, 누군가 그것을 가져갔을 때, 비로소 알게 된다. 양심이라는 한 조각의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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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대부분 도덕을 말하지만, 양심대로 사는 것은 어렵다. 삶은 늘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 속에 양심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남의 물건을 탐내는 심리는, 단순한 욕심에서 출발할 것이다.
그 단순한 욕심과 양심을 조율하는 것은 사람의 내면에 들어있는 방향키다. 그런데 그 방향키를 때로는 잊고, 가끔은 고장 난 척한다.
보통, 양심을 말하지만 그것을 지키려는 의지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