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고, 잃고, 천천히 놓아주고...
친구는 멋쩍은 듯
긴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었다
젊을 때 친구는
머리숱이 빽빽하고 비단결 같았다
그런데 요즘 머릿속이 심상치 않다
아직 젊은데
듬성듬성 전체적으로 휑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모두 사라지고 있다는 걸,
서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무엇도
사라짐을 정의하지 못한다
사람은 늙어간다
늙고 , 잃고, 천천히 놓아주고,
무의식적으로
매 순간 조금씩 사라진다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게 내려와
머리카락에, 피부에, 마음에
천천히 흔적을 남긴다
그것은 삶이었고,
또한 살아냈다는 증거다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을 감춘다
머리카락으로, 피부로, 젊음으로,
온갖 덧칠과 장식으로 덮어둔다
세월은,
감춤을 하나씩 벗겨간다
머리칼이 빠지고, 살결이 꺼지고,
침묵이 길어질수록
드디어 실체를 갖기 시작한다
사라짐은 슬픔이 아니다
그것은,
형태가 부서져야 드러나는
투명한 진실이다
비로소,
외면할 수 없는 질문 앞에
멈춰 서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