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에 사는 여인
복숭아 두 상자가 도착했다. 택배 상자 겉면엔 발신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글을 쓰면서 알게 된 십여 년 지기의 그녀였다. 전화 한 통 없이, 말 한마디 없이 전해진 선물이 그녀답다. 말로 채우기보다 정서로 채우는 사이이고, 문학과 함께한 인연은 생각보다 넓고 깊다.
선물 상자를 열자 달콤한 복숭아 향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발그스레한 복숭아가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복숭아가 담긴 모양처럼 그녀와 나의 사이는,
서로 손대지 않고도 잘 정돈된 사이처럼, 간격이 있어도 무너지지 않는 질서처럼, 언제 만나도 괜찮은 편안한 인연이다.
그녀와의 인연은 특별하지도 않은 글 쓰는 모임의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었다. 대단할 것도 아닌 잔잔하게 스며든 관계다. 삶의 리듬 안에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존재를 알아보았고, 마음으로 옆에 있었다. 그녀와 나눈 문학의 오랜 시간은 서로의 세월을 자연스럽게 붙잡아 두었다.
가끔 나와 함께 했던 인연들을 생각해 보면, 인연 중에 어떤 사람은 머무르고, 어떤 사람은 스쳐 지나간다. 어쩌면 인연이라는 것은, 삶의 속도와 방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얽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른다. 그녀와 나는 서로에게 어떤 역할도 강요하지 않았다. 기대도, 실망도, 과도한 감정도 없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간들. 그것이 십여 년을 만든 토양이었고, 그 속에서 글을 쓰고자 하는 희망의 열기가 천천히 여물었다.
복숭아를 하나 꺼내 씻었다. 물기가 맺힌 과일이 그녀의 성격과 닮았다. 부드럽지만 단단한 조용히 향을 풍기는 사람. 만날 때마다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아도 늘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다. 그녀와 시간은 대부분 문학의 시간이었다. 괴테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가슴앓이를 하는 설명할 필요 없는, 거기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사람이다.
이제 함께 나이 들어간다. 예전보다 체력은 줄고, 문학의 열정도 줄었지만, 편안하게 문학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인지 알게 되었다. 젊은 날의 만남은 열정으로 다가가지만, 중년 이후의 관계는 온기로 스민다. 뭘 특별히 하지 않아도 서로 문학의 향기가 솔솔 풍기는 사람들이다.
인생은 무수한 만남으로 이루어지지만, 진정한 만남은 드물다. 만남은 대단한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위해 있는 것이다. 그녀와의 인연은 서로의 삶에서 그 어떤 목적 없이 있는 그대로라서 좋다.
복숭아는 이웃과 나누어 먹었다. 그녀가 보내준 건 단지 과일이 아니라, 관계의 여유와 세월의 감각이었다. 선물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나눌 수 있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진짜 오래된 인연이 내게 주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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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가 달다. 아주 달다. 삶이 주는 단맛은 이런 것이 아닐까. 복숭아 맛처럼, 마음속에, 오랜 인연 속에. 서로 말없이 나이 들어가는 시간 속에 함께 익어간다.
괴테의 복숭아가 더운 여름,
열기를 시원하게 식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