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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vip 공간에서...

H 백화점 블랙 자스민

by 현월안



가끔은, 어떤 삶은 너무 멀리 있어서 꿈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안개처럼 눈앞에 있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세상, 백화점의 vip 공간에는 그런 세상이 있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 그 안에서는 조금 다른 삶이 펼쳐진다.



그녀는 H백화점 vip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녀의 남편은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다. 평생을

여유롭게 세상을 누린 여인이고, 일 년에 1억 5천 이상을 H백화점에서만 소비해야 그 카드를 가질 수 있다. vip 카드가 있으면, 두 사람까지 함께 들어갈 수 있는 백화점 규정이 있다. 그날,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vip 룸에는 엷은 조명 빛에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부드러운 향기가 가득했다. 디소 소란스러운 백화점 매장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바깥의 소음은 유리 벽을 넘어오지 않았고, 그곳에는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부드러운 의자, 이색적인 테이블, 고급스럽게 준비된 다과와 잘 내린 커피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누구도 급하게 말하지 않았고, 누구도 허겁지겁 무언가를 먹지 않았다. 여유가 있고 점잖았다. 쇼핑에 지쳐 쉬는 사람, 누구를 기다리는 사람, 사업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그들은 서로 다른 이유로 그곳에 있었지만 공통점이 있다. 아주 많은 돈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 그래서 그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처음엔 신기하고 조금은 딴 세상처럼 느껴졌다. 돈이 아주 많다는 것은, 어떤 문을 쉽게 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문 안에는 다른 규칙이 있고, 또 다른 계층이 있다. 화려하고 부드러운 말투와 명품 옷 속에는 생각보다 더 철저한 셈과 무관심이 있었다. 누구도 낯선 이의 존재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들은 익숙했다. 그 공간에, 그 여유에, 그 특권에.



그녀는 사랑스럽고 우아하게 미소 지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언어도 고급스러운 그녀다.

고급스러운 옷, 비싼 가방을 두르고는 백화점에서 많은 혜택을 누린다. 그리고는 하루 일과가 백화점에서 뭔가를 사는 것이 그녀의 일과다.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채우려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무언가를 채우지 않으면 곧 무너질 것처럼.



부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단지 돈이 많은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문을 마음대로 열 수 있다는 그 힘을 말하는 것일까. 그 공간에서 만난 사람들은 행복해 보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눈빛도 있었다. 그저, 아주 잘 정돈된 외로움을 공유하는 사람들 같았다. 서로에게는 무관심하지만, 서로의 존재로 위안받는 신기한 공동체. 그들은 조용히 소비하고, 말없이 비교하고, 그들끼리 거기에 있었다.



백화점 밖으로 나왔다. 다시 익숙한 세상, 사람들이 북적이고 냄새가 뒤섞인 거리. 분명 덜 정돈되어 있고, 더 시끄럽고, 어딘가 부족한 이 세상이 오히려 더 사람답게 사는 세상처럼 느껴졌다. 모든 삶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너무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의 삶은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돈으로는 절대 채울 수 없는 무언가를 쫒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은 완전히 만족할 수 없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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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말없이 속삭인다.

"더 가져야 해. 더 누려야 해"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유리 벽을 마주하고 살아간다. 어떤 이는 그 안을 바라보며 동경하고, 어떤 이는 그 안에 있으면서도 벽 너머를 그리워한다. 그런데, 그 어떤 물건으로도 정신을 채울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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