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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먼저 보낸 이의 슬픔

천국에서 딸을 만났을 것이다

by 현월안



더운 여름이면 친구가 생각난다. 나의 삶이 아무런 문제없이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고, 마음이 평온한 가운데도, 가끔 더운 여름이면 또렷하게 기억되는 잔상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이던 그 해도 유난히 더웠다. 친구는 몸이 뚱뚱 부으며 이상을 느꼈고, 몸에는 이유 없이 붉은 반점이 생기고 어느날 환자기 되었다. 그 끝은 백혈병이라는 이름이었다. 아직 삶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때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죽음을 처음 경험을 한 것이다.



친구는 어느 날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몇 주 후 세상을 떠났다. 예쁘고 여릿하던 어린 마음에, 마치 삶의 커튼이 한순간에 닫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뭔지 모를 때 친구의 죽음은 내 감정의 저변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친구의 죽음도 그렇지만, 더 힘들었던 것은 그 친구의 엄마였다. 우리 집에 매일 찾아와서 와서 울던 친구 엄마의 모습은, 어린 나이에 견딜 수 없는 또 다른 무게였다. 내 손을 붙잡고 하염없이 흐느껴 울던 일은,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누군가의 아픔을 위로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는데, 친구 엄마 앞에서 애써 웃거나 함께 울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 엄마는 더 이상 우리 집을 찾지 않았고, 어린 마음에 안도와 불안함을 그때 동시에 느꼈다. 친구 엄마의 고통은 사라진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간 것뿐이라는 걸, 성인이 되어서야 알게 됐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로서, 하루하루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감히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세월은 그렇게 훌쩍 지나갔다. 지인에게 전화 한 통화를 받았다. 친구의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장례식장에 가지 못했다. 단지 바쁘다는 이유와 핑계 때문이다. 마음은 전해드렸고 여전히 마음 만큼은 그곳에 머문다. 친구 엄마의 애닮픈 마음을 마지막 길에 지켜드려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친구엄마는 하늘나라에서 딸을 만났을까?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향해 간다. 하지만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채 힘들게 살아간다. 자식을 먼저 보낸다는 건 어떤 일일까? 삶을 산다는 것과 동시에 죽음의 일부를 매일 감내하며 살아가는 일일 것이다. 매일 아침 살아 숨 쉬는 것이 죄책감이 되는 삶. 그 삶을 견디기 위해 그때 친구엄마는 남은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었고, 견디기 위해서 울부짖었을 것이다.



이제야 그 무게를 조금 이해가 된다. 친구가 떠나던 여름과 친구 엄마가 떠난 지금의 이 더위 속에서, 그 둘을 떠올리며 내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여름을 어루만진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내게 잠시 머물렀던 친구와의 인연은 잊을수가 없다. 그 때 기억에서 잊지 않겠다고 수없이 수신인 없는 편지를 썼을만큼, 나의 기억에 자리하고 있는 인연이다. 내 안에 여름은 가끔 애써 꺼내보는 사진처럼 그때의 친구를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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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엄마는 이제 외롭지 않을 것이다. 가장 보고 싶던 딸을 다시 만나, 그동안 전하지 못한 말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사람은 그리움의 끝에서 누군가와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소망을 품고 살아간다. 그 믿음이 과하더라도, 그것이 끝내 살아낼 수 있는 유일한 이유인지도 모른다.

그때 그 여름도, 지금 이 여름도 여전히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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