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에서 볼륨의 크기

자유는 소유물이 아니라 관계

by 현월안




버스라는 좁은 공간은

작은 사회를 축소한 모형이다

그 안에는 수많은 우주가 앉아 있고,

우주들은 서로 부딪히지 않기 위해

묵묵히 궤도를 지킨다


나이 지긋하신 남자분이

영어 방송을 크게 틀어놓고,

버스에서 듣고 있다


기사의 부드러운 손짓,
두어 번의 낮은 부탁,
남자는 멈추지 않는다
마치 세상과 자기만 있는 듯,
혼자만의 시간에서 흐른다


남자는 알지 못한다

자유는 소유물이 아니라

관계라는 것을,

자유가 타인의 고요를 침범할 때,

그 자유는 이미 무너진다는 것을


사람들은 아무 말이 없다

침묵은 무력함이 아니라,

말보다 무거운 경계의 표시다

시선은 얼음처럼 고요하고,

조용한 유리창이 되어

말없이 빛을 튕겨낸다
그 안에 담긴 것은
차가움이 아니라,
말하지 않는 거부의 언어다


다음 정류장에서

남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내렸다

남은 것은 희미한 잔향과

다시 고요해진 공기,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질서

공공의 공간은

보이지 않는 선으로 짜여 있다


공공의 장소에서

각자의 우주를 조금씩 접어

겹쳐두는 법을 배운다

그 접힘 속에서

질서라는 투명한 이름이 있고,

존중이라는 줄기가 흐른다


모두가,
말을 삼키고,
시선을 거두고,

서로를 조용히 지켜내는 일
그것이 무언의 약속이고
사회가 숨을 쉬는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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