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꼬리를 천천히 따라가 본다 잔잔하게밀려오는 그리움과 애잔하게다가오는 가볍지 않은 현상들이 내 안에 가득하다마음 한구석에는 큰 우주가 들어온 것처럼 초월한 듯하고 뭔지 모르게 생각의 크기가 한없이 관대했다가 또 한없이 작아지기를반복한다 많은 것이 생각 안에서 시공간을 넘나들며 잔잔하게 일렁이고 있다 생각이 많아질 때 나는 책을 읽는다 마음을 평온하게 안정되게 하는 데는 따뜻한 차 한잔을 옆에 두고 책 읽기가 그만인데, 지금의 나의 심리저변은 그것도 편안하게 다가오질 않는다 문득문득 나도 모르게 초조하고발이 땅에 닿지 않는 붕 뜬 모습을 하고 있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애절한 감정이 깊게 내 안을 감싸고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엄마의 손을 놓치기 싫어서안쓰러움으로 몸부림치기도 하고, '엄마'라고 목놓아 부르며 그 품이 그리워서시공간을 넘나들며 내 기억 속에 있는 것을 자꾸 되뇐다 어찌 부모 자식의 연이 그렇게 쉽게 손 놓을 수 있겠는가어찌 마음 깊은 곳까지 모두 흔들림이 없겠는가 올여름 끝자락에 엄마는 이승의 끈을 놓으셨다
예전에 엄마는 심장수술을 하셨다 움직이지 않았는데 뜀뛰기 한 것처럼 숨이 찬다고 하시며 이상 증상을 호소하셨다 자식들은 서둘러 대학병원에 입원을 절차를 밟았다 진료를 해 보았더니 심실 아래쪽이 이상이 있었다 서둘러 수술 동의를 하고 수술에 들어갔다 여섯 시간이면 끝난다던 수술이 열세 시간이나지나도 끝이나 질 않았다 수술 중간에 흉부외과 주치의가 수술 가운에 온통 엄마피로 범벅을 하고 나와서 하는 말이, 관을 연결하는데서 지혈이 되지 않아서 임시로 봉합을 해 두었다는 얘기였다 지혈되는 것을 지켜보자는 주치의 말에 우리 형제들은 그 자리에서 모두가 까무러치고 말았다
'어찌 세상에 이런 일이!...'
무균복을 입고 수술실 앞에까지 들어갔다 차마 눈으로 볼 수 없는 광경들, 갈비뼈 중앙을 자르고 양쪽으로 펼쳐놓고 피로 가득한 수술의 장면은
'큰일이 벌어졌구나!...'
온몸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서 있을 수가없었다 의료사고가 아니라고 강하게 설명하는 듯 주치의도 사색이 된 표정으로 설명하는데, 아무리 설득을 해도 모든 것이 변명하는 것 같았다 복부를 가르고 열어둔 채로 두다니, 이틀 뒤에 봉합을 하다니 정말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날부터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수술하느라 투여한 것은 많은데 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이 많지 않아서 사람이 풍선처럼 부어서 그야말로 떠질 것 같은 빵빵한 몸으로 변했다
다른 장기가 망가질 수 있어서, 강제로 부기를 뺄 수도 없었고이틀씩이나 수술부위를 열어두어서 감염은예견된 일이었다 감염수치가 잡히질 않아 생사를 가르는 중환자가 된 것이다 오늘이 생사의 고비라는 무시무시한말들... 주치의 선생님의 말에 우리 가족은 눈물로 호소했었다
'제발 우리 엄마 살려주세요?'
주치의 선생님을 붙들고 간절하게 눈물로 애원했었다
가장 쌘 약을 써야 한다는 싸인을 여러 번 거친 후에야 기적이 일어났다 형제들 모두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허공에 대고 '엄마 깨어나야 해!...' 간절함이 통했던지
그 강하다던 염증 수치가 잡혔고 다시 살아난 위대한 엄마의 시간은우리 형제들이 그토록 한마음으로 간절했던 눈물의 시간이었다
그때 수술당시 70대 초반이셨던 엄마를 떠나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은 엄마의 위치가 너무도 컸기 때문이었다 사대부 종부의 큰 살림을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엄마만 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했었다 사대봉 제사며 명절에는 마당까지 늘어서서 제사를 지내는 풍경은 아버지의 강직한 책임과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는 엄마의 심성이 더해진 결과였다 동네방네 음식솜씨 좋기로 소문이 났고 넓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품어 안았던 사대부 종부의 심성이 달랐기에 가능했던 일들이었다 사람에 치이는 일에 치이고 고단한 삶이었지만 엄마는 전혀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고 운명인 듯 사대부 종부의 소임을 다 하셨다
수술 후 생사를 넘나들며 살아낸 엄마의 몸은 예전 같지 않았다 수술 전에 건강하시던 몸이 새털처럼 가벼운 몸이 되었다 지그시 눈물을 훔치며 엄마 손을 잡고
'자네 고생했소... 당신 빈자리가 이렇게 큰 것인 줄 미처 몰랐소...'
라고 하시는 아버지의 눈물에 우리 자식들은 숨죽이며 눈물을 흘렸다
'사람이 꺾어졌는데 그 제사가 뭐가 그리 대순가! 의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마음이 중요하거늘...'
하시며 종손인 아버지의 결단으로 종가의 일들을 축소해서 진행하겠다고 선언하셨다 엄마의 시간이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는 것을 예감하셨던지 그 중요하게 생각하시던 사대부 종가의 모든 일들을 슬림하게 축소되고 소규모로 진행이 되었다 아버지 당신 손으로 종가의 일을 간단하게 해 놓으셨다 그리고는 그만 너무도 안타깝게 엄마 보다도 먼저 아버지는 코로나 기간에 독감과 코로나 감염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누구보다도 안타깝게 여기신 엄마를 두고 아버지는 어찌 먼저 눈을 감으셨을까 싶다
올여름은 유난히 많이도 더웠다 심장 수술을 하셨던 엄마는 여름 나기가 조심스러웠다 심장 수술을 했던 주치의가 매번 하던 말 '더운 여름은 심장의 무리가 많다며 조심하세요'라고 수없이 했던 말이다 엄마는 대궐같이 큰 고향집을 떠나 서울에서 전체적인 건강검진을 하시고는 그대로 언니네 집에서 지내셨다 언니가 3년을 모셨고, 엄마를 아기 다루듯이 살폈다 낮에는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셨다 약간의 기억감소는 있으셨지만 다행히 허리와 다리는 이상이 없으셨다 걷고 움직이는 데는 무리가 없어서 비슷한 또래도 만나고 유치원에 가는 것처럼 그곳에 다시는 걸 즐거워하셨다 언니가 깔끔하고 단정하게 케어해 줘서 멋쟁이 할머니로 통했다
여름 끝자락... 그날도 주간보호에 다녀오시고는 여느 때처럼 널려있던 빨래를 모두 정리해 놓으시고 거실 그 자리에서 한쪽에 누우셨다
'센터에서 오늘 뭐 재미있었어?'라고 언니가 큰소리로 물어도 아무 대답이 없으셔서
'어디가 불편하신가...' 하고 둘러보다가 이상한 예감이 불현듯 스쳐서 살펴봤더니그만...
언니의 다급한 전화 목소리
'큰일 났어... 엄마가... 엄마가 숨을 안 쉬어...'
주치의 말대로 집에서 편안하게 언니 품에서 엄마의 심장이 그대로 멈췄다
엄마는 그렇게 이승의 끈을 놓으셨다
장례식장에 걸려있는 영정 사진에는 엄마가 환하게 웃고 계셨다아버지 돌아가시고 3년 만에 같은 곳으로 모셨다 사대부 종가의 맏종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느라고 집안사람들은아래에서 위까지 모두 다녀가셨다 그것으로 종부의 그간 소임을 알아주는 것 같았다 며칠을 함께하며 장지까지 동참해 주신 친척분들의 발길이 엄마의 손길과 맞닿은 것 같아서 마음이 더 아려왔다 장례식장에서 밤늦게까지 비추는 환한 불빛이 쓸쓸하지 않게 다가왔다 늦은 저녁까지 밤새 지켜주었던 사람들 덕에 엄마는 외롭지 않게 떠나셨으리라생각이 든다 한평생 사람들 속에서 북적이며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값지게 빛을 바라며 사셨던 엄마의 삶이었다우리 사 남매에게 골고루 정을 넘치도록 나누어 주셨고 말속에 정을 듬뿍 담아 무한한 내편이 되어 주셨던 '엄마'라는 이름은 위대함이었다 그래도 수술하시고 10년이나 더 사셨다 어느 날 심장이 멈출 수 있다고 주치의가 자주 했던 말, 그 멈춤이 올해 여름 끝자락일 줄이야...존재만으로 위안이 되었던 온화한 빛, 이제는 그 따스함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쓰리고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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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이 스친다 바람을 타고 어디선가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정스럽게 나를 부르는 것 같아서 뒤를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