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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돌아오는 생일

오늘은 내 생일이다

by 현월안

어린 시절 식구 중에 누군가 생일이 되면 엄마는 미역국을 푸짐하게 끊여서 이웃과 나누어 먹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 생일 맞은 사람의 이름을 기분 좋게, 많은 사람이 기억하리라는 뭐 그런 생각이셨을 것이다 미역국에 소고기를 넉넉히 넣고 어느 때보다 더 맛있게 엄마의 손맛과 함께 한상을 차려내면 그 맛이 꿀맛이었다 사대부 종부였던 엄마의 음식솜씨는 일품이었다 어느 때든 요리가 될 수 있게 저장식품과 제철의 김치가 늘 갖춰져 있어서, 언제든 손님이 오셔도 음식을 차려낼 수 있게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무슨 음식이든 엄마의 손맛을 거치면 환상적인 맛이 되었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온 가족이 축하해 주었던 풍성한 기분은, 동화에서 나오는 주인공이 된 것처럼, 생일은 맘껏 행복한 날이었다


그때에 엄마가 차려주신 생일상이 행복하게 오래도록 남아 있는 걸 보면, 가끔은 엄마의 푸짐하고 정이 가득 담긴 손맛이 그립다 먹을 것이 풍부하지 않았던 때에 맛있게 느꼈던 맛과 그때의 떠들썩했던 그 분위기가 새록새록 그리운 것이다 천진난만하게 떠들며 웃었던 그 맑은 웃음이 생일이 되면 떠오른다 가끔은 아련하게 엄마의 손맛이 그립다 엄마 요리 솜씨 덕분에 고급스러운 입맛을 가져서 그런지, 웬만한 김치는 맛이 없다 요즘은 뭐든 음식이 간단해지고 김치도 종류별로 모두 담가 먹질 않는다 갖가지 종류별로 맛난 엄마의 김치 맛은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꿀맛이었다 더구나 요즘은 푸짐하게 갖춰서 먹지를 않고 양념을 많이 하지 않은 생야채에 소스를 살짝 곁들여 간단히 먹게 된다


먹을 것이 풍부한 세상에서 기름지고 달고 짜고 먹거리가 넘쳐나지만 맘껏 먹을 수가 없다 슬림하게 알맞게 먹어야 하고, 건강을 위해서라도 균형을 맞춰서 절제해야 한다 그래도 가끔 엄마 손맛이 그리울 땐 엄마를 떠올리며 요리 재료를 푸짐하게 사가지고 와서 요리를 한다 엄마의 손맛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요리하는 것이 재미있고, 엄마 솜씨를 대충은 흉내를 낸다 식구들이 요리를 해 놓으면 다행히 맛있어한다 칭찬을 받으면 더 잘하고 싶어서 더 하게 되고 기분이 좋다 모든 것이 엄마에게서 전해진 연결고리에서 흉내를 내는 정도라는 것, 생일이 되면 제일 먼저 엄마의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이 생각난다


아들과 딸이 엄마 생일이라고 떡 케이크를 미리 예약을 해서 사가지고 왔다 보통 빵으로 된 케이크가 흔한데 이번에는 딸의 의견으로 떡 케이크를 주문했다며 활짝 웃는다 그 마음이 어찌나 이쁘던지 '오늘 이 기분은 오래 간직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아유 이뻐라~~ 먹기가 너무 아까운데...'

나도 살짝 들떠서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표정을 하고 있다

'엄마~ 정말 좋아하시네~'

딸아이가 놀려대며 사진을 계속 찍는다

가족 모두가 해맑게 웃었다 가족이라는 가장 허물없이 부딪기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가을 향기와 함께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우리 가족이 이 만큼만 웃을 수 있도록 쭉 이어지길 마음속으로 되뇌어 본다


아들과 딸이 생일날 저녁식사로 예약해 둔 고깃집으로 갔다 고깃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오늘은 내가 주인공이라서 그런지 아들 딸과 남편이 나의 모든 건강을 묻는다 운동을 좀 더 하라는 주문을 한다

옆에서 가장 잘 아는 이들의 말이고 진심이 묻어있고 사랑이 듬뿍 담긴 말들이 너무 귀하다

우리 가족이 그리 걱정 없는 지금 이 순간들이 너무 소중하다 서로에게 애정을 가지고 묻는 말들이 너무 사랑스럽다


행복이 별 건가! 우리 가족이 만들어 놓은 울타리 안에서 맘껏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행복이다

오늘 나의 생일은 떡 케이크만큼이나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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