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마 히로키 철학서
목적에 닿지 않는 길,
그 길 위에서만
철학은 살아 있다
말로만 번져가는 거품 같은 언어,
실천하지 않는
지식의 허망한 반짝임을 믿지 않는다
가르침에서 벗어나
낡은 제도의 폐허에서
스스로의 공간을 세운다
시간의 끝을 허락하고
소크라테스가 술잔을 돌리고
거리에서 사람들과 논쟁하던 것처럼,
철학은 교실보다 대화에서,
강의보다 만남에서 시작된다
쓸모없음 속에서 움트는 가능성,
알고 있는 곳으로 떠났다가
뜻밖의 사건과 마주하는 우연의 축복,
그 어긋난 만남 속에서
새로운 사유가 깨어난다
인터넷은 단숨에 답에 도달하게 하지만
시행착오의 아름다움은 지워버린다
그래서
능동적으로 길을 잃어야 한다고
우발적이고 불필요해 보이는 우회 속에서
철학의 본질은 드러난다
후쿠시마로 향하는
그 위험을 감수해야만 만날 수 있는
현실의 어긋남을 그는 택한다
철학은 중심에서 환영받지 않듯,
경제의 계산법 너머,
실용의 틀 밖에서
쓸모없음처럼 보이는 그 자리에
철학의 태도는 깃든다
철학은 직선으로 진보하지 않는다
플라톤을 데카르트가,
데카르트를 칸트가,
칸트를 하이데거가 극복하는 것이 아닌,
철학은
다시 고전으로,
다시 아마추어로 돌아가고
끝없이 반복되고
순환되어야 한다
그래서
철학은 패배의 시대에도
살아남아야 함을
실천하지 않는 언어가 아니라,
작고 무의미해 보이는
대화와 만남 속에서
이끌어내야 한다
책상 위,
카페의 술잔 속,
그리고 뜻밖의 진실 속에서,
철학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새로운 세상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