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아침마다 오목공원을 걷는다. 도심 속에 자리하고 있지만, 그곳은 늘 자연의 품처럼 나를 감싼다. 나무는 사계절에 맞게 색을 갈아입고, 바람은 잔잔한 음악처럼 들려온다. 걷는 동안 마음은 차분해지고 생각은 맑아진다. 무거웠던 생각은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가벼워진다. 우리 집 가까이에 아름답고 평온한 공원이 있어서 감사하다. 나는 걷기를 통해 몸을 단련하고, 명상을 하고 하루 일과를 계획한다.
공원에서 만나는 풍경 중에서 오래된 장면이 있다. 한 할머니와 손자의 모습이다. 작은 체구의 할머니는 연로해 보이지만, 그 곁에는 산만큼 커다란 덩치를 가진 손자와 늘 함께한다. 손자는 열여섯 살이고 지능은 여섯 살에 머물러 있다. 그는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세상과의 거리를 늘 어색하게 유지한다.
그 둘은 언제나 손에 줄을 매고 걷는다. 줄은 서로를 이어주는 끈이고 삶을 연결하는 다리다. 할머니는 손자가 학교 가기 싫은 날은 손자의 운동을 위해 공원에 데리고 나오신다. 할머니의 열굴에는 단호함이 묻어 있다. 하루 주어진 운동을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와 함께 삶을 손자와 함께 버텨내고, 사랑으로 완성하려는 의식과도 같은 것이다.
손자는 자주 운동을 거부한다. 걷는 대신 땅에 주저앉고 떼를 쓰고 버티기를 한다. '힘들어 힘들어'를 큰 소리로 외친다. 그때마다 공원은 한바탕 소란스러워진다. 그 시끄러움 속에서 더 큰 사랑을 배운다. 공원에서 언제나 할머니의 사랑이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포기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어르고 달래며 새로운 방법을 찾아낸다. 그 모습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애착의 힘'을 그대로 보여준다. 손자가 아무리 저항해도, 애착의 끈을 놓지 않고 끝까지 품어주는 힘이다. 그것이 삶을 지탱하는 원초적인 사랑이다.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감정의 순간적인 폭발이 아니라, 의지와 책임을 가진 지속적인 행동을 말한다. 오목공원의 할머니는 매일 그 철학을 실천한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책임을 지고, 지칠 줄 모르는 의지로 매일 같은 길을 걷는다. 그것은 단순한 가족의 의무보다 삶을 깊이 품은 책임이다. 인간의 행위가 아름다운 것은 사랑으로 빚어진 관계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적으로도, 할머니의 손길은 손자에게 중요한 의미를 남긴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는 규칙적인 생활과 일관된 돌봄 속에서 안정감을 얻는다. 할머니가 세운 원칙, 하루의 운동은 반드시 완수함으로 손자에게 세상과 관계 맺는 질서의 틀을 만들어 준다. 손자는 그 질서를 통해 자신만의 작은 세상을 배우고, 조금씩 성장할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내리사랑을 떠올린다. 부모에서 자식으로, 그리고 자식에서 손자에게까지 흘러내리는 사랑이다.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내려오고, 세대를 넘어 삶을 지탱한다. 젊은 부모가 생계를 위해 일터에 나가 있는 동안, 할머니가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은 사람의 힘이고, 세대를 이어주는 사랑의 연결이다. 사랑이 존재하는 근본적인 힘이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다. 어딘가 부족하고 서로의 돌봄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손자는 할머니의 손을 통해 삶을 배워가고, 할머니는 손자를 통해 다시 사랑을 확인한다. 서로가 서로의 연결인 셈이다.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인생은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실천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
세상은 수많은 이야기가 얽히며 흘러간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이야기는 사랑이라는 한 줄기로 이어져 있다. 오목공원의 할머니와 손자의 모습은 단순한 가르침인데도 큰 울림을 준다. 사랑이 때로 힘겹고 고단하지만, 삶을 지켜내는 유일한 길이다. 아침의 걸음 끝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은 거창한 말속에 있지 않다. 매일 손을 잡고 걸어가는 그 길 위에 있다.